2026년 4월 28일 화요일

[장성민 국정붕괴론] 외교·경제·인사·재난도 흔들린다… 이재명 정권 위기론 4 핵심

 

인사 논란, 재난 대응 미흡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정치 논평 이미지
외교·경제·인사·재난 대응에 사법 리스크까지 겹치며
 정권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kbs

정권이 위기에 빠지는 방식은 대개 비슷하다. 처음에는 “일시적 오해”라고 말한다. 그다음에는 “전 정권 탓”이라고 말한다. 조금 더 지나면 “언론의 왜곡”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국민이 더 이상 설명을 듣지 않는다. 장성민 전 대통령실 기획관의 분석이 겨냥하는 지점은 바로 이 마지막 단계다. 이재명 정권이 흔들리는 이유는 단순히 야권이 시끄럽기 때문이 아니라, 국정의 여러 축이 동시에 삐걱거리며 국민에게 “이 정부, 과연 운전은 할 줄 아는가”라는 불안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장면은 외교다. 한미 관계는 한국 외교의 장식품이 아니라 안보와 경제를 동시에 떠받치는 기둥이다. 그런데 그 기둥을 정권의 이념적 취향이나 국내 정치용 메시지로 흔들기 시작하면, 그 피해는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끝나지 않는다. 장성민의 문제 제기는 여기에 있다. 외교는 말맛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로 하는 것인데, 이 정권은 동맹을 안심시키기보다 의심하게 만들고, 시장을 안정시키기보다 계산하게 만든다는 비판이다. 동맹국은 한국 정부가 어디를 향해 서 있는지 묻게 되고, 주변국은 그 틈을 계산한다. 외교의 가장 위험한 순간은 적이 강해질 때가 아니다. 친구가 “저 사람을 믿어도 되나”라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다.

두 번째 장면은 경제다. 반시장주의라는 말은 정치 구호처럼 들리지만, 실제 경제 현장에서는 아주 구체적인 공포로 번역된다. 기업은 투자 시점을 미루고, 자영업자는 규제와 세금의 방향을 본다. 청년은 일자리가 줄어드는 속도를 체감하고, 중산층은 지갑을 닫는다. 정부가 시장을 설득하지 못하고 훈계하려 들면, 시장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냥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침묵이다. 경제는 대통령의 연설에 박수 치지 않는다. 숫자로 반응하고, 고용으로 반응하고, 환율과 물가와 투자로 반응한다. 장성민의 분석이 말하는 위기는 바로 이 지점이다. 경제를 모르는 정치가 시장 위에 올라타려 할 때, 결국 떨어지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국민의 삶이다.

Shop strapless bras in a variety of sizes like 32AA, 34DD, and more. Find stick on bras, bras with removable straps & more to go with open back dresses.

세 번째 장면은 인사다. 정권의 수준은 인사에서 드러난다. 어떤 정부도 모든 분야를 대통령 혼자 알 수는 없다. 그래서 내각과 참모가 필요하다. 그런데 전문성보다 충성심, 실력보다 코드, 위기관리 능력보다 정치적 안전성이 우선되면 정부는 점점 거대한 선거 캠프처럼 변한다. 국정은 캠페인이 아니다. 장관은 피켓을 드는 사람이 아니라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참모는 대통령의 기분을 맞추는 사람이 아니라 대통령이 듣기 싫은 말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사라지면 권력은 박수 소리 안에서 길을 잃는다. 장성민이 지적하는 부적절한 내각 인사는 단순한 인물평이 아니다. 이 정부가 국가를 운영하는 기준을 잃고 있다는 경고다.

네 번째 장면은 재난 대응이다. 재난은 정권의 속살을 드러낸다. 평소에는 말로 포장할 수 있지만, 재난 앞에서는 준비·판단·지휘·책임이 한꺼번에 시험대에 오른다. 국민은 거창한 이념을 묻지 않는다. “왜 늦었나, 누가 책임지나, 다음에는 막을 수 있나”를 묻는다.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정부는 아무리 말이 많아도 무능해 보인다. 재난 대응 실패는 단순한 행정 실수가 아니라 정권 신뢰의 붕괴로 이어진다. 특히 이미 외교와 경제와 인사에서 불신이 쌓인 상태라면, 재난은 마지막 불씨가 된다. 국민은 “이번에도 우연인가”라고 묻지 않는다. “역시 그런 정부였나”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 위에 가장 무거운 그림자로 얹히는 것은 사법 리스크다. 정권의 도덕성은 완벽할 수 없다. 정치인은 늘 논란 속에 산다. 하지만 사법 리스크가 국정의 중심부에 자리 잡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국가 운영의 판단이 국민 전체가 아니라 특정인의 방어 논리와 엮여 보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정책도 방탄으로 읽히고, 인사도 방탄으로 읽히고, 국회 운영도 방탄으로 읽힌다. 그 순간 법치주의는 구호가 되고, 국정은 변호 전략의 부속품처럼 보인다. 장성민의 분석이 가장 날카롭게 꽂히는 대목도 여기에 있다. 대통령 또는 권력 핵심의 사법 문제가 국가의 정상 작동을 압도하면, 정권은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버티는 상태로 전락한다.

풍자적으로 말하면, 지금의 문제는 정부가 소방서인지, 선거대책본부인지, 변호인단 사무실인지 국민이 헷갈리기 시작했다는 데 있다. 외교 현장에서는 동맹을 달래야 하고, 경제 현장에서는 시장을 달래야 하며, 재난 현장에서는 국민을 달래야 하고, 법정 주변에서는 지지층을 달래야 한다. 달래야 할 곳은 너무 많은데, 정작 달래지지 않는 것은 민심이다. 민심은 홍보 문구로 움직이지 않는다. 민심은 어느 순간까지는 참고, 어느 순간부터는 돌아선다. 그리고 한 번 돌아선 민심은 해명문으로 붙잡히지 않는다.



장성민의 경고를 단순한 정치 공세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권은 대개 야당 때문에 무너지지 않는다. 스스로의 오판 때문에 무너진다. 위기를 인정하지 않고, 비판을 적으로 돌리고, 전문성을 멀리하고, 지지층의 박수만 듣다가 현실과 충돌할 때 무너진다. 국정 운영은 지지자 결집 대회가 아니다. 국가를 운영한다는 것은 자신을 싫어하는 국민의 삶까지 책임지는 일이다. 그런데 그 책임감이 보이지 않고, 오직 방어와 공격과 선전만 보인다면, 정권의 위기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결국 이 분석의 핵심은 하나다. 이재명 정권의 위기는 어느 한 사건의 위기가 아니라 누적된 불신의 위기라는 점이다. 외교 실패는 안보 불안을 낳고, 경제 실험은 생활 불안을 키우며, 인사 실패는 국정 불신을 만들고, 재난 대응 미흡은 국가 기능에 대한 의심을 부른다. 여기에 사법 리스크까지 겹치면 국민은 묻게 된다. “지금 이 정부는 나라를 운영하는가, 아니면 자기 운명을 방어하는가.”

정권의 몰락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먼저 말이 안 먹히고, 그다음 설명이 안 통하고, 마지막에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게 된다. 그때 권력은 아직 청와대와 대통령실과 국회 안에 있을지 몰라도, 민심의 자리에서는 이미 퇴장한 것이다. 장성민의 분석이 던지는 메시지는 그래서 섬뜩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센 구호가 아니라, 더 늦기 전에 국정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하지만 권력이 가장 못 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일. 정권의 붕괴는 보통 그 한 문장을 끝내 말하지 못할 때 시작된다.

참고문헌

  • 장성민 전 대통령실 기획관의 이재명 정권 위기 분석 요지
  • 대한민국 헌법상 법치주의·국정 책임 원칙에 관한 일반적 정치 논평 맥락
  • 한미동맹, 시장경제, 재난 대응, 내각 인사의 정치적 책임에 관한 일반 시사 분석 프레임

Socko/Ghost

[북한 실상] 모스크바에 내린 北청년 수출의 민낯 ... 북러 밀착의 어두운 그림자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한 북한 청년들을 배경으로 북한과 러시아의 밀착, 해외 노동자 문제, 강제노동 의혹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시사 풍자 이미지
관광 노선처럼 포장된 평양-모스크바 항공길 뒤로
 북한 청년들의 해외 노동과 외화벌이 의혹이
 다시 떠오르고 있다./donga-joosungha

모스크바 공항에 북한 청년들이 나타났다.

그 장면 하나가 묘하다. 여행객처럼 보이지만 여행의 표정은 아니고, 유학생처럼 보이지만 학문의 냄새도 희미하다. 단체로 움직이고, 버스가 기다리고, 누군가 인솔하고, 누군가는 어디론가 데려간다.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의 ‘北토크’가 포착한 장면은 이달 17일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서 북한 청년들이 출구를 빠져나와 대형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이다. 기사에 따르면 해당 영상은 우크라이나 매체 유로마이단 익스프레스가 공개한 것으로 전해졌다.

풍자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다.
북한 정권은 늘 청년을 “혁명의 계승자”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 계승자가 모스크바 공항에 내리는 순간, 혁명은 갑자기 노동계약서가 되고, 충성은 외화 송금표가 되며, 미래는 버스에 실려 어느 현장으로 이동한다. 평양의 선전문구로는 ‘청년강국’이지만, 현실의 국제선 도착장에서는 ‘청년 수출국’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더 기막힌 것은 항공편의 용도다. 동아일보 보도는 지난해 7월 모스크바-평양 직항 노선이 열렸지만 러시아 관광객 수요는 극히 낮았고, 원래 월 2회 운항해야 할 직항기가 지난 9개월 동안 월평균 1회 수준으로 운항됐다고 전했다. 러시아 정부가 북한 관광 활성화를 위해 항공사에 1회 비행 약 1억5000만 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그런데 평양으로 가는 관광객은 적고, 반대로 평양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오는 비행기에는 북한 인력이 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붙는다.

말하자면 관광 노선인 줄 알았더니, 체제의 인력 통로가 된 셈이다.
러시아인은 평양 관광을 가지 않는데, 북한 청년은 모스크바로 간다. 관광은 비었고 노동은 찼다. 이것이야말로 독재 체제 특유의 역설이다. 정상국가라면 항공 노선은 사람의 자유 이동을 상징한다. 그러나 북한식 항공 노선은 자유가 아니라 동원이다. 탑승권은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지시의 결과일 가능성이 크고, 도착지는 꿈이 아니라 할당량일 가능성이 높다.

Shop strapless bras in a variety of sizes like 32AA, 34DD, and more. Find stick on bras, bras with removable straps & more to go with open back dresses.

외신과 인권단체의 맥락을 붙이면 그림은 더 선명해진다. 코리아타임스가 NK뉴스를 인용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5년 북한 국적자에게 총 3만6413건의 비자를 발급했고, 이 가운데 98%가 넘는 3만5839건이 교육 비자였다. 그러나 NK Pro 조사 등은 러시아 기업들이 ‘학생 연수’라는 명목으로 북한 노동자를 조달하는 방식을 지적해 왔다. 공식 통계상 노동 비자는 없는데, 교육 비자가 폭증하는 구조다.

여기서 풍자는 더 날카로워진다.
세상 어느 나라의 유학생이 그렇게 단체로, 그렇게 조용히, 그렇게 공항 밖 버스에 실려 사라지는가. 교육 비자라면 학교가 보여야 하는데, 자꾸 건설 현장이 보인다. 연수라면 강의실이 나와야 하는데, 외신 보도에서는 숙소, 감시, 임금 공제, 장시간 노동이 나온다. 이름은 유학인데, 실물은 노동이다. 포장지는 교육이고, 내용물은 외화벌이다.

국제 인권단체 Global Rights Compliance는 2026년 3월 보고서에서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의 증언을 공개했다. 이 보고서는 북한 해외 노동 프로그램이 약 40개국에서 작동하며, 러시아 건설 현장 노동자들이 월 할당액을 채우도록 강요받고, 하루 최대 16시간 노동, 사실상 쉬는 날 없는 근무, 매우 낮은 실수령액, 열악한 숙소 등의 사례가 있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런 구조가 북한 정권에 연간 약 5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강제노동 체계라고 지적했다.

이 대목에서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청년들은 러시아에 무엇을 배우러 갔는가. 러시아어인가, 건설 기술인가, 아니면 “국가가 개인의 시간을 얼마나 끝까지 짜낼 수 있는가”라는 독재의 실무인가. 김정은 체제가 말하는 청년 사랑은 늘 거창하지만, 실제 청년에게 돌아가는 것은 군복, 작업복, 감시자, 할당금, 그리고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를 긴 겨울뿐이다.

러시아 입장도 노골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는 인력 부족과 전쟁 복구 수요를 동시에 안고 있다. 로이터는 러시아와 북한이 2024년 포괄적 전략동반자 조약을 체결했고, 그 조약에 상호방위 조항이 포함됐으며, 북한이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러시아군과 함께 싸우도록 약 1만4000명의 병력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최근 러시아 내무장관의 방북 역시 양국 협력이 더욱 깊어지는 흐름 속에 이뤄졌다.

그러니 모스크바 공항의 북한 청년들은 단순한 입국자가 아니다.
그들은 북러 밀착의 가장 약한 고리이자 가장 적나라한 증거다. 위에서는 푸틴과 김정은이 악수하고, 아래에서는 북한 청년들이 러시아 땅으로 이동한다. 정상회담장에서는 전략동반자라고 부르지만, 공항 도착장에서는 노동력 수송으로 보인다. 위에서는 동맹이고, 아래에서는 동원이다.



가장 슬픈 풍자는 이것이다.
북한 정권은 청년에게 미래를 맡긴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래를 팔고 있다. 청년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내보내고, 교육하는 것이 아니라 감시하며, 꿈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할당액을 부과한다. 국가가 젊은이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가 국가를 먹여 살린다. 그것도 자기 이름으로가 아니라, 김정은 체제의 이름으로.

모스크바 공항에 나타난 북한 청년들의 장면은 그래서 조용하지만 무겁다. 총성이 없고, 군사 퍼레이드도 없고, 미사일 발사도 없다. 그러나 그 장면은 북한 체제의 본질을 더 선명하게 보여준다. 사람을 자원으로 보는 국가, 청년을 통치의 연료로 쓰는 권력, 국제 제재를 피해 ‘학생’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노동력을 흘려보내는 체제.

북한의 청년들은 혁명의 꽃이 아니라 체제의 송금 수단이 되고 있다.
그리고 모스크바 공항은 그 꽃이 어디로 꺾여 가는지를 보여준 무대였다.

참고문헌

  1. 동아일보, 주성하의 ‘北토크’, “모스크바 공항에 나타난 북한 청년들”, 2026년 4월 25일.
  2. The Korea Times / NK News, “Russia issued over 36,000 visas to North Koreans in 2025, almost all for education”, 2026년 4월 8일.
  3. Global Rights Compliance, “New Report Reveals Testimonies of North Koreans Exploited Across Russia…”, 2026년 3월 25일.
  4. Reuters, “Russian interior minister arrives in North Korea for talks”, 2026년 4월 20일.

Socko/Ghost


2026년 4월 27일 월요일

[언론권력 식탁] 트럼프 옆 ‘Ask China’ 기자... 총격보다 묘한 자리 vs 한국 언론은 아직 문밖인가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에서 트럼프 대통령 옆에 앉은 CBS 위자장 기자의 상징성과 미국 언론 권력, 한국 특파원의 한계를 분석하는 국제 시사 이미지
백악관 기자단 만찬 총격 사건의 이면에는 트럼프와
 과거 충돌했던 중국계 미국인 기자 위자장이
 미국 언론 권력의 중심에 선 장면이 있었다./cnn


뉴스는 총성으로 시작됐지만, 진짜로 오래 남을 장면은 식탁이었다.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장에서 총격 사건이 발생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한 번 직접적 위해 상황에 노출됐다. 그 자체로 큰 뉴스다. 그러나 조금 비틀어 보면, 이 사건의 더 묘한 장면은 총격 직전의 헤드 테이블에 있었다. 트럼프 옆에는 CBS 뉴스의 백악관 선임 특파원이자 백악관출입기자협회 회장인 위자장(Weijia Jiang)이 앉아 있었다. 바로 그 위자장이다. 2020년 코로나19 브리핑에서 트럼프에게 “왜 미국인이 매일 죽어가는데 이것을 글로벌 경쟁처럼 보느냐”고 물었고, 트럼프로부터 “중국에 물어보라”는 답을 들었던 중국계 미국인 기자다. 당시 트럼프는 기자회견을 갑작스럽게 끝냈고, 이 장면은 미국 언론사에서 인종과 권력, 언론 자유를 둘러싼 상징적 충돌로 기록됐다.

그러니까 이번 만찬의 진짜 뉴스성은 단지 “트럼프가 위험했다”가 아니다.
그보다 더 기묘한 것은, 한때 트럼프가 공개석상에서 쏘아붙였던 기자가 이제는 미국 백악관 기자단을 대표하는 자리에 올라, 트럼프 바로 옆에 앉았다는 점이다. 정치와 언론이 서로 으르렁대다가도 공식 만찬장에서는 나란히 앉아 웃어야 하는 나라. 서로를 불편해하면서도 제도적으로는 같은 테이블을 공유하는 나라. 이 장면은 미국 정치의 위선이기도 하고, 동시에 미국 제도의 힘이기도 하다.

위자장은 그냥 ‘중국계 기자’가 아니다. 백악관출입기자협회 공식 약력에 따르면 그는 CBS 뉴스의 백악관 선임 특파원으로 2017년부터 백악관을 취재해 왔고, 아시아계 미국인 대상 폭력 증가와 관련 정책 변화도 보도해 왔다. CBS 보도에 따르면 그는 2026년 백악관출입기자협회장으로 활동하며 만찬장에서 트럼프 옆에 앉았고, 총격 이후에도 침착하게 상황을 관리하고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간 것으로 평가받았다.

여기서 한국 독자에게 이 뉴스가 더 중요해진다.
왜냐하면 이 장면은 “중국계 미국인이 미국 언론 권력의 중심에 들어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의 사람이 아니라, 중국계 미국 시민이자 미국 기자가 미국 대통령 옆자리에 앉아 질문하고, 행사를 주관하고, 위기 상황에서 언론의 대표 역할을 한다. 중국과 미국이 전략경쟁을 벌이는 와중에도, 중국계 미국인은 미국 제도 안에서 백악관 기자단의 얼굴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미국의 복잡함이다. 반중 정서와 아시아계 혐오가 존재하면서도, 동시에 아시아계 기자가 권력의 가장 가까운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사회다.

Shop strapless bras in a variety of sizes like 32AA, 34DD, and more. Find stick on bras, bras with removable straps & more to go with open back dresses.

그런데 한국 언론은 이 장면을 어떻게 읽고 있는가.
대부분은 “총격 발생, 용의자 체포, 트럼프 대피”를 빠르게 옮긴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그 정도라면 한국 기자가 워싱턴에 있을 이유는 절반으로 줄어든다. 외신 속보를 번역해 붙이는 일은 서울에서도 할 수 있다. 진짜 워싱턴 특파원의 역할은 사건의 표면 아래에 깔린 권력의 배열을 읽는 것이다. 누가 어느 자리에 앉았는가. 누가 누구에게 웃었는가. 누가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위치에 있는가. 그 장면이 한국에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 정치에서 ‘자리’는 곧 권력이다.
백악관 브리핑룸의 좌석 배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명단, 국무부 백그라운드 브리핑 초청 여부, 만찬장 헤드 테이블. 이 모든 것은 단순한 의전이 아니라 정보 접근권의 지도다. 위자장이 트럼프 옆에 앉았다는 것은 개인의 출세담을 넘어, 미국 주류 언론 내부에서 아시아계 기자가 어떤 위치까지 들어갔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그리고 그 상징을 한국 언론이 놓친다면, 우리는 미국 뉴스를 읽는 것이 아니라 미국 뉴스의 제목만 읽고 있는 셈이다.

더 아픈 대목은 한국 특파원 문제다.
한국은 안보, 반도체, 관세, 환율, 방위비, 대북정책까지 미국 워싱턴의 결정에 직접 영향을 받는 나라다. 그런데 정작 한국 언론이 미국 권력의 핵심 공간에서 독자적 질문을 던지는 장면은 드물다.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한국 기자가 한국의 국익을 걸고 영어로 직접 추궁하는 장면, 미국 대통령이나 국무장관에게 한국 현안을 현장에서 압박하는 장면은 아직도 예외적이다. 많은 경우 한국 독자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로이터, AP, CNN이 먼저 던진 질문과 프레임을 한국어로 다시 읽는다.

이것은 개인 기자 한두 명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사의 투자 구조, 언어 훈련, 장기 파견 전략, 특파원의 전문성 축적, 미국 정치 네트워크 구축의 문제다. 워싱턴은 단기 체류자가 뚫기 어려운 도시다. 브리핑장에 들어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질문권을 얻어야 하고, 질문을 준비해야 하며, 답변을 다시 파고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기자 개인의 영어 실력만이 아니라, 언론사의 전략과 국가적 정보 감각이 필요하다.

풍자적으로 말하면, 한국 언론은 가끔 워싱턴에 특파원을 보내 놓고도 미국 기사를 ‘직구’하지 못하고 ‘구매대행’처럼 소비한다.
미국 언론이 먼저 해석한 뒤, 한국 언론이 그 해석을 다시 포장한다. 그러면 미국 민주당 성향 매체의 프레임도, 공화당 성향 매체의 프레임도 그대로 수입된다. 한국의 이해관계는 그 사이에 끼워 넣어진다. 워싱턴 권력의 현장에서는 한국이 당사자인데, 기사에서는 한국이 종종 관객처럼 보인다. 이것이 문제다.

이번 위자장 장면이 뉴스가 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녀가 중국계라서가 아니라, 미국 권력의 심장부에서 자기 이름으로 질문하고, 자기 자리로 앉고, 자기 판단으로 움직이는 기자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와 악연이 있었음에도 제도는 그를 배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기자단 대표로 세웠다. 그것이 미국 언론 제도의 자존심이라면, 한국 언론은 그 장면 앞에서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누구를 어디까지 밀어 올렸는가. 한국 기자는 워싱턴에서 누구 옆에 앉아 있는가. 아니, 앉기는 하는가.



물론 미국 언론도 완벽하지 않다.
정파성은 심하고, 클릭 경쟁은 거칠며, 트럼프 보도에서는 찬반이 거의 종교처럼 갈라진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권력과 같은 방 안에 들어가 싸운다. 질문을 던지고, 망신을 당하고, 다시 질문한다. 반면 한국 언론은 때로 미국 언론의 싸움을 중계하면서 자신이 취재했다고 착각한다. 이 차이는 작지 않다. 세계의 중심부를 직접 뚫는 기자와, 중심부의 중계 화면을 받아쓰는 기자 사이에는 정보 주권의 차이가 있다.

결국 이 뉴스는 만찬장 총격의 뉴스이면서, 동시에 언론의 자리 싸움에 관한 뉴스다.
트럼프와 위자장이 같은 테이블에 앉은 것은 불편한 장면이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민주주의의 장면이다. 권력자는 자신을 괴롭혔던 기자 옆에 앉아야 하고, 기자는 자신을 공격했던 권력자 옆에서도 질문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사이에 총성이 끼어든 것은 미국 정치의 비극이지만, 그 총성 속에서도 기자가 다시 마이크를 잡은 것은 언론의 존재 이유다.

한국 언론이 이 장면에서 배울 것은 간단하다.
외신을 옮기는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외신이 놓친 한국적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다. 워싱턴의 복도에서 누가 웃었는지, 누가 불편했는지, 누가 침묵했는지 읽어내는 눈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한국 기자도 미국 대통령 옆자리에서 한국의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미국 뉴스를 번역하는 나라가 아니라, 미국 권력에 질문하는 나라가 된다.

이번 사건의 총성은 분명 속보였다.
하지만 진짜 뉴스는 그 전부터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트럼프 옆에 앉은 위자장.
그 장면을 읽지 못하면, 우리는 여전히 뉴스를 보는 것이 아니라 자막만 읽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1. The Guardian, “Don’t ask me. Ask China”: Trump clashes with reporters then abruptly leaves press briefing, 2020.05.11.
  2. The Washington Post, “Trump’s ‘ask China’ response to CBS’s Weijia Jiang shocked the room…”, 2020.05.12.
  3. White House Correspondents’ Association, Weijia Jiang official profile.
  4. Business Insider, “CBS journalist Weijia Jiang gets props for poise under pressure after press dinner shooting”, 2026.04.26.
  5. The Guardian, “Trump thought sound of gunman at journalists’ dinner was tray falling”, 2026.04.26.
  6. The Washington Post, “Inside the chaotic correspondents’ dinner shooting…”, 2026.04.26.
Socko/Ghost

[정치 풍자] 7400억짜리 침묵…송경호가 던진 ‘누가 대장동 항소를 막았나’ 폭탄

 

송경호 전 서울중앙지검장이 대장동 항소 포기 논란과 7886억 원 추징금, 473억 원 인정액의 간극을 비판하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정치 풍자 이미지
송경호 전 서울중앙지검장은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를 두고 천문학적 범죄수익 환수 기회를 포기한
 사법적 배임이라고 비판했다./namuwiki


정치권은 늘 무대를 잘 고른다.
조명이 강한 곳에 청문회를 세우고, 박수를 칠 사람과 야유할 사람을 미리 배치한다. 그리고 “진실 규명”이라는 현수막을 걸어놓는다. 그런데 가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무대 위에서 크게 떠드는 질문보다, 무대 뒤에서 조용히 사라진 결정 하나가 더 큰 폭탄이 된다. 송경호 전 서울중앙지검장의 발언이 바로 그 지점을 찔렀다. 그는 대장동 사건 1심에 대한 검찰의 항소 포기를 두고 “부패 세력에게 천문학적 범죄수익을 사실상 헌납한 참담한 사법적 배임”이라고 직격했다.

이 사건의 숫자는 단순하지 않다.
검찰은 대장동 민간업자들에게 7886억 원의 추징금을 구형했지만, 1심에서 인정된 추징금은 473억 원대에 그쳤다. 송 전 지검장의 주장은 여기서 시작된다. 검찰이 항소했다면 상급심에서 추징 범위와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다시 다툴 수 있었지만, 항소를 포기하면서 그 기회 자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송 전 지검장은 이를 “상급심의 판단 기회를 봉쇄한 비상식적인 결정”이라고 했다.

풍자적으로 말하면 이렇다.
정치권은 “누가 조작했느냐”고 소리치는데, 정작 국민이 물어야 할 질문은 “누가 7400억 원짜리 문을 닫았느냐”일 수 있다. 범죄수익 환수는 정의의 마지막 계산서다. 징역형이 아무리 무겁게 나와도, 돈이 그대로 남으면 범죄는 실패한 사업이 아니라 성공한 투자처럼 보인다. 부패범죄에서 추징은 부속품이 아니라 본체다. 그런데 그 본체를 다툴 항소가 사라졌다면, 이것이야말로 청문회장을 통째로 세워 물어볼 사안 아닌가.

Shop strapless bras in a variety of sizes like 32AA, 34DD, and more. Find stick on bras, bras with removable straps & more to go with open back dresses.

더 민감한 대목은 내부 의견이다.
송 전 지검장은 4년 동안 190여 차례 공판을 수행한 1·2기 수사팀 검사 24명 중 항소 제기에 이견을 가진 검사가 한 명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즉 현장을 아는 수사·공판팀은 항소 필요성을 봤는데, 최종적으로 검찰 지휘부가 멈췄다는 구조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사건은 단순한 법률 판단 차이가 아니라 지휘 체계 붕괴 논란으로 간다. “수사팀이 졌다”가 아니라 “수사팀의 항소 의사가 묵살됐다”는 프레임이 되는 것이다.

지난해 항소 포기 당시에도 검찰 내부 반발은 거셌다. YTN은 수사팀이 “윗선에서 부당하고 전례 없는 지시로 항소장 제출을 막았다”고 반발했고,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했다고 보도했다. 대한변협신문도 검찰 내부에서 “검찰은 죽었다”는 식의 강한 반발이 나왔다고 전했다. 물론 법무부와 지휘부 쪽은 항소 포기가 법률적으로 문제 없다는 취지의 설명을 해왔다. 그러나 바로 그 설명이 국민에게 충분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여기서 송경호의 발언이 정치적으로 폭발력을 갖는다.
그는 단순히 “내 수사가 옳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국회에서 진행되는 조작기소 의혹 청문회가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며, 진짜 국정조사와 특검이 필요한 곳은 대장동 항소 포기라고 주장한다. 청문회가 박상용 검사나 수사팀을 겨누고 있다면, 송 전 지검장은 그 카메라를 반대로 돌리려는 것이다. “수사가 조작됐느냐”가 아니라 “왜 항소가 포기됐느냐”를 보라는 역공이다.

이 대목이 바로 정치 풍자의 핵심이다.
대한민국 정치권은 늘 “진실”을 말하지만, 진실은 자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켜지는 조명이다. 어떤 청문회는 수사팀을 피고석에 앉히려 하고, 어떤 입장문은 지휘부를 피고석에 앉히려 한다. 국민 입장에서는 둘 다 물어야 한다. 수사가 조작됐는지도 물어야 하고, 항소가 왜 포기됐는지도 물어야 한다. 다만 돈의 흐름과 법적 효과만 놓고 보면, 항소 포기는 매우 구체적인 결과를 남겼다. 상급심에서 추징금을 더 다툴 기회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송 전 지검장은 국정조사 청문회 자체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대장동 사건을 성남시 수뇌부와 민간업자가 장기간 결탁해 공공개발 이익을 사유화한 권력형 부패범죄로 규정했고, 최고 의사결정권자의 책임 여부를 규명하는 것은 수사의 기본 원칙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일부 조작 의혹에 대해서는 녹취록을 조작할 이유나 실익이 없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뉴스1 보도에 따르면 그는 피고인 변호인과 사건 고발을 주도한 의원들이 국정조사특위에 포함된 구조도 문제 삼았다.

물론 이 사안에는 반론도 있다.
항소 포기가 곧바로 “범죄수익 헌납”이라는 표현으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법무부와 검찰 지휘부는 1심 판결의 법리, 항소 실익, 피고인 측 항소 여부 등을 따졌을 가능성이 있다. 피고인들이 항소한 상태에서 검찰이 항소하지 않았을 때 어떤 법적 제한이 생기는지, 추징금 문제를 어디까지 다툴 수 있는지 역시 법률적으로 정교하게 봐야 한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더더욱 공개적 설명이 필요하다. 7886억 원과 473억 원의 간극은 행정적 해명 몇 줄로 덮기엔 너무 크다.

정치적 감각으로 보면 이 사건은 “조용한 폭발”이다.
총선도 아니고 대선도 아니고, 거리 시위도 아니다. 그러나 사법 시스템 안에서 항소장 하나가 제출되지 않은 순간, 수천억 원의 국가적 이해가 방향을 틀었다는 의혹이 생겼다. 이것은 자극적 구호보다 훨씬 무겁다. 검사들이 줄줄이 반발했고, 지검장이 사의를 표명했으며, 전직 지검장이 공개적으로 국정조사와 특검을 요구한다면, 최소한 “왜 그랬는지”는 국민이 들어야 한다.



풍자의 결론은 간단하다.
대장동 사건은 처음부터 돈의 사건이었다. 땅값, 개발이익, 배당금, 특혜, 배임, 추징금.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도 결국 돈이 남았다. 검찰이 얼마를 구형했고, 법원이 얼마를 인정했으며, 항소를 했으면 얼마를 더 다툴 수 있었는지. 이 숫자의 싸움이야말로 대장동의 본질이다. 그런데 정치권은 자꾸 사람만 보여준다. 누구를 청문회장에 세울 것인가, 누구를 망신 줄 것인가, 누구의 진술을 뒤집을 것인가. 하지만 국민이 궁금한 것은 더 단순하다. 돈은 어디로 갔고, 누가 그 돈을 다시 다툴 기회를 멈췄는가.

송경호의 발언은 그래서 폭탄이다.
폭탄이 반드시 새 사실을 터뜨려서 폭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모두가 알고 있던 숫자를 다시 읽게 만들 때도 폭탄이 된다. 7886억 원과 473억 원. 그리고 그 사이의 7400억 원대 간극. 이 숫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정치권의 어떤 고함보다 크게 들린다.

국회가 정말 진실을 원한다면 묻는 순서는 간단하다.
조작기소 의혹도 묻고, 항소 포기도 물어라.
검사의 수사도 묻고, 지휘부의 침묵도 물어라.
피고인의 주장도 듣고, 190여 차례 공판을 버틴 수사팀의 판단도 들어라.

그런데 만약 한쪽 질문만 크게 틀고 다른 쪽 질문은 꺼버린다면, 그것은 진상규명이 아니라 정치 편집이다.
그리고 대장동 항소 포기 논란은 그 편집된 화면 바깥에서 계속 묻고 있다.

누가 7400억짜리 항소장을 멈춰 세웠는가.

참고문헌

  1. 뉴스1/다음, 「전 중앙지검장 ‘조작기소’라는 정치적 판결…사법권 독립 침해」, 2026.04.19.
  2. 뉴시스/네이트, 「대장동 수사 지휘 송경호 前지검장 ‘항소 포기, 국조·특검해야’」, 2026.04.26.
  3. 네이트, 「송경호 전 지검장 ‘국정조사·특검 필요한 곳은 대장동 항소 포기’」, 2026.04.26.
  4. YTN, 「대장동 항소 포기에 수사팀 강력 반발…중앙지검장 사의」, 2025.11.08.
  5. 대한변협신문,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 ‘검찰은 죽었다’ vs. ‘문제 없어’」, 2025.11.11.
  6. 경기일보, 「검찰 항소 포기로 7천억 ‘대장동 재벌’ 생긴다」, 2025.11.10. 

Socko/Ghost

2026년 4월 26일 일요일

[워싱턴 충격] 백악관 기자단 만찬 총격…트럼프, 세 번째 총격 위기 앞에 섰다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 총격 사건으로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대피한 상황을 배경으로, 미국 정치폭력과 총기 문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국제 시사 이미지
언론 자유와 정치 풍자의 상징이던 백악관 기자단
 만찬장이 총격과 대피의 현장으로 바뀌며 미국 정치폭력의
 심각성이 다시 드러났다.instagram-donaldtrump


정치의 무대가 연단에서 식탁으로 옮겨왔을 뿐, 총성은 따라왔다. 백악관 출입기자단 만찬은 원래 미국 정치의 희극적 휴전지대에 가깝다. 대통령과 기자, 정치인과 방송인, 권력과 풍자가 한 공간에 모여 웃고 비꼬고 악수하는 자리다. 그런데 2026년의 그 만찬장은 어느 순간 축하의 공간이 아니라 대피의 공간이 됐다. 워싱턴 힐튼 호텔에서 열린 행사 도중 총격이 발생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는 긴급히 대피했다. 가디언은 용의자가 캘리포니아 출신 콜 토마스 앨런으로 확인됐으며, 총기와 흉기를 소지한 상태였다고 보도했다. 한 비밀경호국 요원은 방탄조끼에 총탄을 맞았고, 트럼프 부부는 다치지 않았다.  


이 장면은 잔혹하다. 미국 민주주의는 이제 연설장뿐 아니라 만찬장에서도 방탄조끼를 필요로 한다. 대통령 후보 유세장에서 총알이 날아오던 나라가, 이제는 언론과 권력이 함께 앉는 공식 만찬장에서도 “엎드려라”는 비명을 듣게 됐다. 권력자를 비판하기 위해 모인 기자단의 밤이, 권력자를 보호하기 위한 경호 작전의 밤으로 바뀐 것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었지만, 오늘의 미국 정치에서는 펜과 칼과 총이 같은 행사장 입구에서 뒤엉킨다.


Shop strapless bras in a variety of sizes like 32AA, 34DD, and more. Find stick on bras, bras with removable straps & more to go with open back dresses.

용의자로 지목된 콜 토마스 앨런은 31세의 캘리포니아 토런스 거주자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가 칼텍 출신이며, 교육 분야에서 일했고 ‘Teacher of the Month’로 소개된 이력도 있다고 전했다. 당국은 현재 범행 동기를 조사 중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그를 ‘단독 범행자’로 묘사했다. 아직 수사 초기인 만큼 정치적 동기나 조직적 배후를 단정할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 개인의 이력보다,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미국 사회가 더 이상 완전히 놀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이미 총격의 정치적 기억을 몸에 새긴 인물이다. 2024년 7월 13일 펜실베이니아 버틀러 유세장에서 총격을 받았고, 당시 장면은 미국 대선의 상징적 이미지가 됐다. 피를 흘린 얼굴, 치켜든 주먹,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후보. 그 이미지는 지지층에게는 생존과 저항의 상징이 됐고, 반대편에게는 미국 정치가 어디까지 거칠어졌는지를 보여주는 경고가 됐다. 이번 기자단 만찬 총격까지 포함하면, 트럼프는 지난 2년간 반복적으로 직접적 총격 위험에 노출된 셈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단순히 “트럼프가 또 위기를 넘겼다”로만 보면 절반만 보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 정치가 총격 사건을 점점 하나의 배경음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유세장에는 금속탐지기가 있고, 학교에는 총기 난사 훈련이 있으며, 의회에는 방탄문이 있고, 대통령 만찬장에는 비밀경호국이 총을 뽑는다. 민주주의의 기본 장면이 토론과 투표라면, 지금 미국의 기본 장면은 토론과 투표 사이에 배치된 경호선이다.


백악관 기자단 만찬이라는 장소성도 뼈아프다. 이 행사는 언론 자유와 권력 감시를 기념하는 자리다. 대통령이 농담을 듣고, 기자가 권력을 조롱하고, 권력자가 웃으며 버티는 것이 미국식 정치 문화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총격이 발생했다는 것은 단순한 치안 실패 이상의 상징성을 갖는다. 미국 정치의 유머는 이제 비상구 위치를 확인한 뒤에야 가능해졌다.


물론 트럼프 정치가 미국의 분노를 증폭시켰다는 비판은 오래됐다. 동시에 트럼프를 향한 적대 역시 위험 수위를 넘나들었다. 문제는 어느 한쪽의 분노만 골라 비난하기에는 미국 사회 전체의 정치 언어가 이미 폭발물처럼 변했다는 점이다. 선거는 전쟁이 되고, 상대는 경쟁자가 아니라 적이 되며, 패배는 정책 실패가 아니라 국가 붕괴처럼 말해진다. 이런 언어의 기후 속에서 총은 늘 누군가의 손에 먼저 도착한다.


그래서 이번 사건의 핵심은 “누가 쐈는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왜 정치가 계속 총성에 가까워지는가. 왜 유권자의 분노는 투표소보다 방아쇠 쪽으로 더 쉽게 상상되는가. 왜 미국은 총기 문제를 매번 애도하고도 다음 사건을 예약하듯 살아가는가. 이 질문들이 남는다. 용의자 한 명이 체포돼도, 정치폭력의 토양은 체포되지 않는다.


트럼프는 이 사건을 통해 다시 한 번 ‘생존자’의 이미지를 얻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는 법 집행기관을 칭찬했고, 자신과 가족, 행정부 주요 인사들이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냈다. 지지층은 이를 “또 살아남은 지도자”의 서사로 받아들일 수 있다. 반면 반대 진영은 총기 규제와 정치 극단주의의 문제를 다시 제기할 것이다. 그렇게 미국 정치는 총격 이후에도 다시 양쪽의 해석 전쟁으로 들어간다. 총알은 한 방향으로 날아갔지만, 해석은 양극으로 갈라진다.


결론은 씁쓸하다. 미국은 세계에 민주주의를 가르치겠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정작 자국의 정치 행사는 점점 군사작전처럼 운영된다. 후보 유세장, 의회, 법원, 언론 만찬장까지, 민주주의의 무대마다 경호와 검색과 방탄이 덧씌워진다. 말의 자유를 기념하는 만찬장에서 사람들이 테이블 밑으로 숨었다면, 그것은 한 행사장의 사고가 아니라 한 정치문화의 자화상이다.


트럼프는 살아남았다. 비밀경호국도 임무를 수행했다.
용의자도 체포됐다. 그러나 미국 정치가 정말 안전해졌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총격범은 붙잡혔지만, 총격을 상상 가능한 정치 언어로 만든 시대는 아직 체포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1. The Guardian, “Suspect in custody after Trump evacuated in shooting incident at White House correspondents’ dinner”, 2026.04.26.  
  2. Wall Street Journal, “Caltech Grad, ‘Teacher of the Month’ Named as Washington Shooting Suspect”, 2026.04.26.  
  3. People, “White House Correspondents’ Dinner Shooting Suspect Was ‘Lone Wolf,’ Trump Says…”, 2026.04.26.  
  4. Los Angeles Times, “What we know about Cole Tomas Allen, Torrance teacher suspected in WHCD shooting”, 2026.04.25.  
  5. Sky News, “Cole Thomas Allen: What we know about suspected gunman at Trump dinner”, 2026.04.26. 
Socko/Ghost

2026년 4월 25일 토요일

[국가안보 재판] 김용현 최후진술 “나를 벌하라, 군은 묶지 말라”…평양 무인기 이적죄 논란

평양 무인기 의혹으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징역 25년이 구형됐다. 김 전 장관의 최후진술은 군사작전의 정당성, 이적죄 적용, 군 지휘권 위축 논란을 동시에 던졌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평양 무인기 의혹 재판과 징역 25년 구형을 상징하는 법정·군사 안보 콘셉트 이미지
평양 무인기 의혹 재판에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징역 25년이 구형되며, 군사작전의 정당성과 이적죄 적용을
 둘러싼 안보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segyeilbo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징역 25년이 구형됐다. 혐의의 이름은 무겁다. 일반이적. 특검은 12·3 비상계엄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평양에 무인기를 투입하는 작전이 지시됐고, 그 결과 남북 군사 긴장이 고조됐으며 군사상 이익이 저해됐다고 본다. 같은 사건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는 징역 30년이 구형됐다. 이 재판은 단순한 형사재판이 아니다. 대한민국 군사작전의 성격을 법정이 어디까지 판단할 수 있는지, 그리고 적을 향한 군의 대응이 사후 정치 프레임 속에서 어디까지 범죄화될 수 있는지를 묻는 사건이다.

쟁점은 선명하다. 특검의 시각에서 이 작전은 북한을 자극해 군사적 충돌 분위기를 만들고, 비상계엄 선포의 정치적 명분을 쌓으려 한 위험한 행위다. 반대로 김 전 장관 측의 논리는 전혀 다르다. 북한의 오물 풍선 도발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응징과 억제 차원의 군사작전이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충돌하는 것은 사실관계만이 아니다. 국가 안보를 보는 관점 자체가 충돌한다. 한쪽은 “도발 유도”를 말하고, 다른 한쪽은 “도발 억제”를 말한다.

김 전 장관의 최후진술이 강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처벌보다 군의 위축을 더 크게 말했기 때문이다. 요지는 이렇다. 자신에게 내릴 형량은 더 무겁게 해도 좋으니, 군의 대비 태세와 지휘 판단만큼은 흔들지 말아 달라는 호소다. 이것은 법정 전략이라기보다 군 조직 전체를 향한 경고처럼 들린다. 전쟁을 억제해야 할 군이, 적의 도발보다 사후 수사와 정치 보복을 더 두려워하게 되는 순간, 그 군대는 이미 절반은 무장해제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문제의식이다.

Shop strapless bras in a variety of sizes like 32AA, 34DD, and more. Find stick on bras, bras with removable straps & more to go with open back dresses.

특히 그가 꺼낸 ‘당나라 군대’ 비유는 자극적이지만 상징적이다. 역사 속 당나라 군대가 권력 내부의 숙청과 정치적 계산 속에서 기강을 잃고 오합지졸의 상징으로 전락했다는 경고다. 적과 싸워야 할 장수들이 전장을 보는 대신 권력의 눈치를 보게 되면, 군대는 외형만 남고 정신은 사라진다. 이 비유는 오늘의 한국군을 향해 던지는 질문으로 바뀐다. “앞으로 지휘관들은 북한의 도발을 보고 즉각 판단할 것인가, 아니면 훗날 법정에서 자신의 판단이 어떻게 재단될지를 먼저 계산할 것인가.”

물론 재판의 최종 판단은 법원이 할 일이다. 일반이적 혐의는 적과의 통모 여부와 별개로 대한민국의 군사상 이익을 해치거나 적국에 군사상 이익을 준 경우 성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리상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죄목이다. 실제로 특검은 무인기 추락과 작전·전력 관련 기밀 유출 가능성, 군사 긴장 고조 등을 구형 이유로 제시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단순히 “북한에 강경했으니 무죄”라고 말할 수도 없고, 반대로 “정치적으로 위험했으니 이적”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러나 정치적 파장은 이미 법정 밖에서 폭발하고 있다. 북한이 오물 풍선과 각종 심리전으로 한국 사회를 흔드는 상황에서, 그 대응 작전이 이적죄의 피고석에 오른 장면은 보수층과 안보 여론에 강한 충격을 준다. “북한을 겨냥한 작전이 어떻게 북한을 이롭게 한 죄가 되느냐”는 반문이 나오는 이유다. 이 질문은 법리의 영역을 넘어 국민 감정의 영역으로 번진다. 적을 향한 억제 조치가 내부 정치의 언어로 재해석되는 순간, 국민은 헷갈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대한민국 군은 어디까지 싸울 수 있고, 어디서부터 처벌받는가.

김 전 장관의 최후진술이 뜨거운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그는 자신의 무죄만을 말한 것이 아니라, 군인의 본능이 법정에서 유죄가 되는 시대를 경고했다. 군인은 원래 위험을 관리하는 직업이다. 평화로운 책상 위에서 완벽해 보이는 판단은 실제 안보 현장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의 도발은 회색지대에서 오고, 대응 역시 회색지대에서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회색지대를 사후에 흑백의 정치 구도로 잘라버리면, 다음 지휘관은 결심하지 않는다. 보고서를 올리고, 책임을 미루고, 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군은 안전해질지 모르지만 국가는 위험해진다.

더 무서운 것은 이 사건이 앞으로의 안보 판단에 남길 그림자다. 북한이 또다시 풍선, 드론, 해킹, 국지 도발, 심리전으로 한국을 흔들 때 현장의 지휘관은 무엇을 떠올릴까. 국민의 생명인가, 적의 의도인가, 아니면 전임 장관에게 구형된 징역 25년인가. 바로 그 순간부터 억제력은 문서 속 단어가 된다. 적은 총을 쏘지 않아도 된다. 상대 군대가 스스로 손발을 묶게 만들면 된다.



그래서 이 재판의 진짜 쟁점은 김용현 한 사람의 운명만이 아니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이 여전히 정전 상태의 나라라는 현실을 다시 묻는다.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멈춰 있을 뿐이다. 그 멈춤을 지키는 것은 선언문이 아니라 억제력이고, 억제력은 결국 군의 판단과 결심에서 나온다. 법은 군을 통제해야 한다. 그러나 법이 군의 정당한 대응 의지까지 마비시킨다면, 그 법적 승리는 안보의 패배가 될 수 있다.

김용현 전 장관의 최후진술은 그래서 한 노병의 항변처럼 들린다. “나를 벌하라. 그러나 군을 겁먹게 만들지는 말라.” 이 문장은 정치적으로는 논쟁적이고, 법적으로는 아직 판결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안보적으로는 무겁다. 대한민국의 군대가 적을 향해 서는 조직인지, 아니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법정의 피고석을 먼저 떠올리는 조직인지, 그 갈림길이 이 재판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의 판결은 단순히 한 장관의 유무죄를 가르는 데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앞으로 대한민국 군 지휘관들이 북한의 도발 앞에서 어떤 심장으로 결심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 법정은 죄를 판단하겠지만, 역사는 그 판결이 군의 용기를 살렸는지, 아니면 군의 눈치를 키웠는지를 함께 기록할 것이다.

참고문헌

  1. 연합뉴스, 「‘평양무인기 의혹’ 尹·김용현 일반이적 혐의 오늘 1심 변론 종결」, 2026.04.24.
  2. 연합뉴스/뉴스통, 「특검, ‘평양무인기’ 윤석열에 징역 30년 구형…김용현 징역 25년」, 2026.04.24.
  3. MBC, 「‘北 무인기’ 의혹 尹·김용현 일반이적 재판 이번 주 결심」, 2026.04.19.
  4. SBS, 「‘평양 무인기 의혹’ 윤·김용현 일반이적 혐의 오늘 1심 변론 종결」, 2026.04.24.
Socko/Ghost

[독립 논단] 권력은 충성을 먹고 배신자를 만든다…유동규 진술이 찌른 대장동의 급소

대장동 재판에서 유동규 전 본부장의 진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남욱·이화영 등 진술 번복 논란 속에서, 유동규가 말한 배신감과 정치 재판의 민낯을 풍자 논단 형식으로 짚었다.


대장동 재판과 유동규 전 본부장의 법정 진술, 진술 번복 논란을 풍자적으로 표현한 정치 재판 콘셉트 이미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의 진술은 대장동
 재판에서 진술 번복, 검찰 회유 논란, 정치적 배신감이라는
 쟁점을 다시 끌어올리고 있다./joongang



재판정에는 이상한 계절이 있다.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정권이 바뀌면 진술이 핀다. 어제의 증언은 오늘의 회유가 되고, 오늘의 고백은 내일의 조작이 된다. 법정은 분명 같은 법정인데, 출입문을 어느 권력이 열고 닫느냐에 따라 진실의 색깔이 바뀐다. 대장동 재판은 지금 그 계절의 한복판에 서 있다.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의 진술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자신의 태도 변화가 검찰의 압박이나 회유 때문이 아니라, 이재명 측에 느낀 배신감 때문이었다고 주장해 왔다. 최근 보도에서도 유 전 본부장은 대장동 수사 과정에서 태도를 바꾼 이유가 검찰 회유가 아니라 이재명 전 대통령에 대한 배신감이었다는 취지로 밝혔다. 과거에도 그는 구속 이후 자신을 보호하기보다 정보를 캐묻는 듯한 변호인 접견 등을 겪으며 배신감을 느꼈다고 법정에서 진술한 바 있다.

Shop strapless bras in a variety of sizes like 32AA, 34DD, and more. Find stick on bras, bras with removable straps & more to go with open back dresses.

여기서 풍자의 칼날은 한 사람에게만 향하지 않는다. 문제는 유동규가 선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인가가 아니다. 대장동 사건의 주변 인물들이 모두 성자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국민도 안다. 애초에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 대부분은 정의의 흰옷을 입고 무대에 오른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문에 질문은 더 날카로워진다. 더러운 손들 사이에서도, 왜 어떤 손은 갑자기 깨끗한 손으로 세탁되고, 어떤 손은 끝까지 더러운 손으로 남겨지는가.

남욱의 진술 번복 논란은 이 질문을 더 크게 만든다. 연합뉴스는 대장동·대북송금 등 윤석열 정부 수사 사건에 대해 조작기소 의혹이 제기되는 가운데, 남욱·이화영 등 핵심 인물들이 과거에도 진술을 여러 차례 번복한 전력이 있다고 보도했다. 특히 남욱은 과거 진술과 달리 이후 재판에서 검찰 수사 과정의 압박을 주장하며 입장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오마이뉴스도 남욱이 과거 김용·정진상 관련 진술을 했다가 이후 “형들” 표현을 쓰지 않았다는 취지로 번복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 유동규는 왜 아직도 말을 바꾸지 않는가. 이것이 불편한 대목이다. 정치적으로 보면, 지금 가장 편한 길은 “나도 회유당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박수치는 사람들이 생긴다. 국회 마이크가 열린다. ‘검찰 조작’이라는 거대한 깃발 아래 과거의 말은 세탁되고, 새로운 진술은 민주화 투쟁의 고백처럼 포장된다. 진술 번복은 더 이상 번복이 아니라 ‘양심선언’이 된다. 아주 편리한 세상이다. 어제는 공범, 오늘은 피해자. 내일은 증인 보호 대상. 대한민국 정치 재판정에는 이보다 빠른 신분 세탁소가 드물다.

그런데 유동규는 그 길을 아직 택하지 않고 있다. 그는 자신이 이재명을 위해 살았다고 믿었던 시간, 성남시 개발 사업의 내부에서 보았던 권력의 작동 방식, 그리고 구속 이후 자신이 버려졌다고 느낀 순간들을 반복해서 말한다. 과거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그는 “감옥 안에서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걸 깨달았다”며 이재명 측에 불리한 진술을 하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 말은 법정 진술이면서 동시에 배신자의 독백이다. 권력은 충성을 요구하지만, 충성한 사람의 감옥살이까지 책임지지는 않는다.

대장동의 핵심은 원주민 이익이었나, 정치적 치적이었나. 이 질문도 다시 살아난다. 유동규의 주장대로라면, 대장동은 공공개발의 포장지를 두른 정치 상품이었다. 주민의 땅, 민간업자의 이익, 성남시장의 치적, 대선주자의 브랜드가 한 솥에 들어간 거대한 개발 요리였다. 그런데 요리가 완성된 뒤 식탁에 앉은 사람들은 많았고, 설거지할 사람은 따로 정해졌다는 것이 그의 배신감이다. 이 풍자극의 제목을 붙인다면 이렇다. “치적은 위에서 먹고, 죄책감은 아래로 내려간다.”



권력은 늘 진술의 도덕성을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진술의 방향을 먼저 본다. 나에게 불리하면 회유, 나에게 유리하면 진실. 나를 겨누면 조작, 상대를 겨누면 양심. 그래서 한국 정치에서 진실은 법정 증거가 아니라 당적을 갖는다. 진술서도 색깔이 있다. 같은 입에서 나온 말도 정권에 유리하면 ‘폭로’가 되고, 불리하면 ‘검찰의 작문’이 된다.

유동규의 진술을 무조건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법정은 증거로 판단해야 하고, 피고인과 증인의 말은 언제나 검증되어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는 분명하다. 이 사건에서 진술 번복과 진술 유지가 정치적으로 다른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점이다. 말을 바꾼 사람은 새 시대의 증인이 되고, 말을 바꾸지 않은 사람은 낡은 수사의 잔재가 된다. 이 얼마나 편리한 정의인가.

결국 대장동 재판은 부패 사건을 넘어 한국 정치의 기억상실증을 보여준다. 권력은 사람을 쓰고, 필요가 없어지면 버린다. 버려진 사람은 입을 열고, 권력은 그 입을 다시 조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국민은 묻는다. “그럼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을 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한, 대장동은 끝나지 않는다. 판결이 나도 끝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사건의 진짜 피고석에는 특정 개인만이 아니라, 권력의 계절마다 갈아입는 대한민국 정치의 얼굴이 앉아 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1. 조선일보, 「유동규 ‘檢 압박 아닌 이재명 배신감에 사실 털어놔’」, 2026.04.24.
  2. 연합뉴스, 「정권따라 바뀌는 말들…대장동·대북송금·서해피격 진실은」, 2026.04.18.
  3. 경향신문, 「유동규 ‘10년간 이재명 위해서 산다 스스로 세뇌했지만…’」, 2023.03.09.
  4. 연합뉴스, 「유동규 ‘형제라 한 사람들에 배신감…이젠 사실만 이야기’」, 2022.10.24.
  5. 오마이뉴스, 「철거업자 증언 ‘유동규, 3억 상환’…검찰 기소와 정면 배치」, 2026.04.16. 
Socko/Ghost

조태용 1심, 이재명 일변도 사법 분위기에 제동 걸었나... 사법의 체면인

  조태용 1심은 내란 전체를 부정한 판결이 아니라, 정치의  대세와 법정의 증명 책임이 다르다는 점을 사법부가  남긴 기록으로 읽힐 수 있다./ghostimages 조태용 전 국가정보원장 1심 판결을 두고 해석이 분분하다. 누군가는 “결국 내란...

가장 최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