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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14일 화요일

정민철은 왜 올공에서 '문화전쟁'을 벌였나?...'희화화·악마화' 발언 조직적 여론전이었나?

 

정민철 정책위원회 부의장이 자신의 정치적 대표 업적으로 이른바 '문화전쟁'을 내세우면서 정치권 안팎에서 적지 않은 논란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출마를 선언한 정민철 정책위원회 부의장이
 자신의 정치적 대표 업적으로 이른바 '문화전쟁'을 내세우면서
 정치권 안팎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gimage


정민철 씨는 자신이 '문화전쟁'을 전개했다고 공개적으로 설명하며, 올림픽공원 집회에 영향을 미쳤다는 취지의 주장을 내놓았다. 이러한 발언을 두고 일각에서는 조직적인 온라인 여론전이 시민집회에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반면, 실제 집회 참가 인원 변화와 직접적인 인과관계는 객관적인 검증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민철 씨는 현재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이며, 2026년 8월 17일 전당대회 최고위원 출마를 선언한 2001년생 정치 인플루언서다. 그는 유튜브·인스타그램 등에서 정치 콘텐츠를 제작해왔고, 잠실 시위를 이재명 정부가 맞은 큰 정치적 위기로 평가하면서 자신이 관련 메시지를 SNS로 확산시켰다고 설명했다.

그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나이가 젊거나 SNS를 잘 활용해서가 아니다. 스스로 말하는 정치적 성과의 핵심이 잠실 시위를 둘러싼 ‘문화전쟁’에 개입하고, 온라인 여론의 방향을 바꾸었다는 주장이기 때문이다. 최근 인터뷰에서도 그는 민주당이 문화전쟁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점을 최고위원 도전의 주요 명분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드시 검증해야 할 지점이 있다.

첫째, 그가 제작한 콘텐츠가 정말로 잠실 시위 참가자를 줄였는가. 잠실 시위는 6·3 지방선거 당시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시작됐고, 한때 자정에도 약 8천 명이 모였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후 집회 성격을 둘러싸고 ‘참정권 항의’와 ‘부정선거론 확산’이라는 상반된 해석이 충돌했다.

둘째, 그가 내세우는 수천만 조회수의 집계 방식은 무엇인가. 여러 게시물의 중복 노출을 합산한 것인지, 플랫폼별 도달 수인지, 재생 수인지, 고유 시청자 수인지가 공개되지 않는다면 ‘5천만’이나 ‘8천만’이라는 숫자만으로 실제 여론 영향력을 입증하기 어렵다. 현재 공개적으로 확인되는 자료만으로는 그 수치 전체를 독립적으로 검증하기 어렵다.

셋째, 시민의 항의를 희화화하거나 특정 집단 전체를 낙인찍는 방식이 정당한 정치 커뮤니케이션인가. 잠실 현장에는 투표용지 부족과 선거 관리 문제에 항의하는 청년들이 있었고, 동시에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참가자들도 섞여 있었다는 보도가 공존한다. 이를 하나의 집단으로 뭉뚱그려 조롱하거나 악마화했다면, 그것은 사실관계 교정이 아니라 정치적 낙인찍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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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그러한 활동이 최고위원 후보의 대표 업적으로 칭찬받을 만한가. 그는 민주당의 청년 소통 부재를 비판하며 문화전쟁과 SNS 정치를 자신의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의 역량은 반대 집단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조롱했는가가 아니라, 갈등을 얼마나 정확하게 진단하고 공론의 장으로 끌어냈는가로 평가해야 한다.

 정민철 씨가 주목받는 이유는 청년이어서도, SNS를 잘해서도 아니다. 이재명 정부에 부담이 될 수 있었던 잠실 시위를 온라인 ‘문화전쟁’의 대상으로 삼고, 자신이 여론의 흐름을 바꿨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민의 항의를 조롱하고 시위 참가를 억제했다는 자기평가가 과연 민주주의 정치인의 자랑이 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정치인은 시민을 설득할 수 있지만, 시민을 희화화한 성과를 훈장처럼 내세워서는 안 된다. 잘못된 정보는 바로잡아야 하지만, 선거 관리에 분노한 시민 전체를 극단주의자로 몰아가는 것은 사실 확인이 아니라 정치적 낙인일 수 있다.

특히 5천만 또는 8천만 조회수라는 숫자는 집계 기준부터 검증돼야 한다. 플랫폼의 총재생 수인지, 여러 게시물의 누적 노출인지, 중복 시청이 포함됐는지조차 불분명한 숫자가 정치적 영향력의 증거로 소비돼서는 곤란하다. 조회수는 관심의 크기를 보여줄 수 있지만, 주장의 진실성과 정치적 정당성까지 증명하지는 못한다.

더 큰 질문은 민주당이 왜 이런 활동을 높게 평가하는가다. 참정권 침해를 호소하는 시민과 부정선거론자를 구분해 대화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집권당의 책임이다. 반대 여론을 알고리즘으로 제압하고, 시위대가 줄었다는 것을 정치적 성과로 내세우는 순간 민주주의는 설득의 정치에서 동원과 조롱의 정치로 후퇴한다.

정민철 씨가 최고위원에 도전할 자격이 없다고 미리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최고위원 후보라면 자신이 만든 콘텐츠의 조회수뿐 아니라 그 내용의 정확성, 시민을 대하는 태도, 반대 의견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도 검증받아야 한다. 청년 정치의 새로움은 나이에 있지 않다. 권력을 비판하는 청년까지 존중할 수 있는 태도에 있다.

정민철이 정말 잘한 일이 있다면 그 실적은 검증하면 된다. 그러나 시민집회를 희화화하고 참가자가 줄었다는 사실을 정치적 전공으로 내세운다면, 먼저 물어야 한다. 그것은 청년 정치의 성공인가, 권력 편에 선 온라인 선전전의 성공인가.

'문화전쟁'은 정치의 승리인가, 민주주의의 후퇴인가

정치는 언제부터 상대를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상대를 조롱하는 기술이 되었을까.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출마를 선언한 정민철 정책위원회 부의장이 자신의 정치적 대표 업적으로 이른바 '문화전쟁'을 내세우면서 정치권 안팎에서 적지 않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공개 기자회견에서 잠실 시위를 이재명 정부의 최대 정치적 위기로 판단했고, 하루 서너 시간만 자며 관련 콘텐츠를 제작한 결과 엿새 만에 5천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일반 청년들이 더 이상 그 시위에 가지 않도록 만드는 데 기여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최고위원이 되면 민주당 디지털전략실을 확대하고 당 차원의 상설 온라인 홍보 연합체를 구축하겠다는 구상도 함께 제시했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조회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다. 정치인이 자신의 대표 업적으로 무엇을 선택하는가이다. 산업을 키웠는가, 제도를 개선했는가, 청년 일자리를 만들었는가가 아니라 특정 시민집회를 둘러싼 온라인 여론전을 가장 큰 정치적 성과로 제시했다는 점은 분명 새로운 정치 현상을 보여준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적 활동을 자유롭게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시민의 집회와 시위를 둘러싼 온라인 공방을 '문화전쟁의 승리'로 규정하고 그것을 최고위원 출마의 핵심 경쟁력으로 제시하는 순간, 국민 역시 그것이 과연 공당 지도부가 자랑해야 할 정치적 성취인지 질문할 권리를 갖는다.

'문화전쟁(culture war)'이라는 개념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오랫동안 낙태, 교육, 종교, 성 정체성, 표현의 자유 등을 둘러싼 가치 충돌을 설명하는 정치학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최근에는 소셜미디어 알고리즘이 여론 형성의 중심으로 이동하면서 문화전쟁은 거리보다 온라인에서 더 치열하게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정민철 부의장이 사용한 '문화전쟁' 역시 이러한 정치 커뮤니케이션 전략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문화전쟁은 어디까지나 정책과 가치의 경쟁을 의미하지, 시민 전체를 조롱하거나 특정 집단을 사회적으로 낙인찍는 행위 자체를 정치적 성과로 평가하지는 않는다. 정치는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기술인 동시에 반대편 시민도 함께 설득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에서 또 하나 짚어야 할 부분은 조회수와 정치적 영향력을 동일시하는 태도다. 정 부의장은 5천만 회 조회수를 언급하며 자신의 온라인 활동이 큰 파급력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 공개된 자료만으로는 해당 수치의 집계 방식이나 범위를 독립적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더 중요한 것은 설령 수천만 회의 노출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곧 정치적 정당성이나 사회적 합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알고리즘은 관심을 증폭시킬 수는 있지만 진실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조회수는 영향력의 지표일 수 있어도 공공성의 기준은 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이 지점에서 스스로 답해야 할 질문이 있다. 정민철 부의장은 최고위원 출마를 선언하며 민주당의 온라인 대응 체계를 전면적으로 재편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당으로서는 디지털 정치 전략을 강화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전략이 반대 진영과의 정책 경쟁이 아니라 시민사회를 상대로 한 감정적 대립과 낙인 효과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건강성을 약화시킬 위험도 함께 안게 된다. 집권당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은 상대를 침묵시키는 능력이 아니라, 다른 의견을 가진 시민까지 제도와 정책으로 설득하는 능력이다.

정민철 부의장이 정말 새로운 청년 정치인인지 여부는 조회수가 아니라 앞으로의 정치가 답할 것이다. 청년 정치의 혁신은 새로운 플랫폼을 사용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드는 데 있다. 온라인 여론전은 현대 정치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것이 시민을 향한 조롱과 적대의 경쟁으로 흐른다면 결국 남는 것은 진영의 환호뿐이다. 정치는 선거에서 이기는 기술을 넘어 사회를 통합하는 책임이다. 최고위원을 꿈꾸는 정치인이라면, 문화전쟁의 승리를 말하기 전에 민주주의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먼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참고문헌

  1. 연합뉴스, 「與 정민철, 최고위원 출마…"문화전쟁 승리로 李정부 성공"」, 2026.7.7.
  2. 매일일보, 「[전대 인터뷰] 정민철 '문화전쟁' 승리로 민주 청년정치 새 지평」, 2026.7.12.
  3. 아시아경제, 「與 정민철, 최고위원 출마…"문화전쟁 승리로 李정부 성공"」, 2026.7.7.
  4. 김용민TV 관련 인터뷰(출마 및 문화전쟁 발언)
  5. 정민철 공개 기자회견 및 SNS 공개 발언(인스타그램·쇼츠 등).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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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2월 7일 일요일

국민의 꿈? 정치가 모르는 그것 - 국민의 꿈을 정치가 말한다고? 그 순간 그 꿈은 더러워진다.

 

세상소리 ㅣ Master of Satire


[논평]

정치인들은 요즘 유행처럼 말합니다. “국민의 꿈을 완성하겠다.”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 “우리가 달라지겠다.” “국민의 꿈을 정치가 말한다고? 그 순간 그 꿈은 더러워진다.”

국민이 진짜 꿈꾸는 건 ‘정치 참여’가 아니다.
‘정치 무관심이 가능해지는 나라’다 국민 대부분은 정치와 함께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정치에 관심을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정치가 너무 망가져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관심을 가지는 것일 뿐입니다. ‘정치와 함께 싸우는 국민’이 아니라, ‘정치가 제발 국민을 가만히 두는 나라’ — 이게 국민의 꿈입니다.
그런데 국민이 정치와 함께 ‘싸우고 싶어 한다’는 착각부터 버려라 정치권은 늘 말합니다. “국민이 함께 싸워야 바뀝니다.” 웃기지도 않습니다. 국민은 나라 구하려고 태어난 게 아닙니다. 당신들 때문에 싸우는 겁니다. 당신들이 일을 못 하니까. 당신들이 나라를 망치니까. 당신들이 권력을 사유화하니까. 국민은 원래 정치에 관심도 없습니다. 정치가 너무 개판이라 어쩔 수 없이 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국민에게 “같이 싸우자”고요? 일 못하는 사람이 직원에게 ‘같이 일하자’고 말하는 꼴입니다.

국민의 꿈은 ‘개혁’이 아니다 .
‘갈등 없이 일어나는 평범한 아침’이다 개혁, 정의, 혁신, 공정. 정치권이 늘 들고 있는 단어들입니다. 그런데 국민의 꿈은 훨씬 단순합니다. “아무 일 없이 하루가 끝나는 나라.” 경제 폭락도, 사법 폭탄도, 정쟁도, 팬덤 정치도 없이 내 일만 하면 되는 그런 나라.
정치인이 “국민의 꿈을 완성한다”는 말은 존재 자체가 사기다. “정치가 내 삶을 망치지 않는 나라.” 그런데 정치권은 어떻게 합니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경제가 뒤집히고 세금 정책은 롤러코스터 노동·교육·복지·안보까지 10년 주기로 뒤바뀝니다. 그러면서 국민 보고 꿈을 말하라고요? 지금 국민이 꾸는 건 ‘꿈’이 아니라 ‘악몽’입니다. 정치권이 만든 악몽. 정치권이 꿈을 말하는 건 방화범이 “우리 함께 집을 더 따뜻하게 만들자”고 말하는 수준입니다.

국민의 꿈은 ‘한두 명의 지도자’가 아니다.
‘지도자가 안 보이는 국가 시스템’이다 정치인들은 영웅 서사를 좋아합니다. “한두 명의 정치인이 여러분과 함께 꿈을 완성하겠다.” “우리가 107명이 되겠다.” 이렇게 묻습니다: 국민은 ‘정치 영웅’을 원한 적이 없다. 영웅이 필요 없는 시스템을 원했다. 독일 시민들이 메르켈에게 열광한 이유는 그가 영웅처럼 싸워서가 아니라, 시스템이 굴러가도록 조용히 일했기 때문이다.
"국민은 영웅을 원하는 게 아니다, ‘정치인이 사라져도 되는 시스템’을 원한다." 정치권은 이제 연설마다 영웅 놀이입니다. “제가 바꾸겠습니다!” “우리가 새로운 미래입니다!” “국민은 너희를 원한 적이 없다.” 국민이 원하는 건 너희가 떠나도 국가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는 나라, 너희가 실수해도 내 삶이 흔들리지 않는 구조, 너희가 사고를 쳐도 경제가 펑크나지 않는 체제입니다.
나라는 굴러가는데 정치인은 가끔 갈아 끼우는 부속품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어떻습니까? 정치인이 부속품이 아니라 주인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국민 위에 올라타서 “여러분의 꿈은 제가 완성하겠습니다”라고 말하죠. 이건 희극도 아니고, 비극도 아닙니다. 그냥 국가적 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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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꿈은 ‘국민의힘 완성’도, ‘민주당 심판’도 아니다.
 ‘정치가 삶의 통증을 안 주는 나라’다 정치가 국민을 치유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정치가 만든 통증을 국민이 매번 감당해온 게 대한민국의 역사입니다. 국민의 꿈은 이겁니다: “정치가 더 이상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지 않는 사회.” 정당이 바뀌어도, 대통령이 바뀌어도, 국민의 삶이 크게 흔들리지 않는 나라. 이게 진짜 꿈입니다.
국민의 꿈은 “정치가 무력화되는 나라”다. 정치권은 본인들이 나라를 만든다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먹여 살리는 건 정치가 아닙니다. 기업, 노동자, 자영업자, 학생, 부모, 연구자, 농민, 개발자… 매일 피터지게 사는 국민들입니다. 정치는 그 곡식 위에서 밥상만 차려 먹는 존재입니다. 심지어 숟가락까지 빼앗아갑니다.
“정치가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않는 나라.” “정치 결정이 국민 삶을 파괴하지 않는 나라.” “정치인이 국가의 주인이 아니라 관리자로 격하되는 나라.” 이게 국민의 꿈입니다. 당신들이 말하는 ‘국민의 꿈’ 같은 건 없습니다. 그건 정치권이 지어낸 권력 마케팅 슬로건입니다.

국민의 꿈은 ‘권력의 완성’이 아니라 ‘삶의 완성’이다.
국민은 정치인을 믿고 싶은 게 아니라, 안 보고 살고 싶다 정치인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국민의힘을 완성시켜 달라!” “우리가 국민의 꿈을 이룰 테니 힘을 모아달라!” “국민은 너희를 완성시키고 싶지 않다.” “국민은 너희가 자기 역할만 하고 조용히 했으면 좋겠다.” 국민의 꿈은 정치 혁명이 아니라 정치 절제가 필요합니다. 정치가 튀어나오지 않는 나라, 정치인이 히어로가 되지 않는 나라, 정치가 국민의 일상을 파괴하지 않는 나라. 이게 진짜 국민의 꿈입니다. 
“국민의 꿈을 말할 자격은 정치가 그 꿈을 빼앗는 일을 멈춘 뒤에나 생긴다.” 그 전까지 정치가 말하는 “국민의 꿈”은 전부 허무한 선전문구, 포장된 권력욕, 그리고 국민을 이용하려는 언어적 기만일 뿐입니다. 정치인들은 늘 말합니다.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 “국민의 목소리를 담겠다.” “국민의 꿈을 완성하겠다.” 하지만 정치인의 연설에서 말하는 ‘국민의 꿈’은 실제 국민이 품고 사는 꿈과 단 1㎜도 맞닿아 있지 않습니다.
그럼, 진짜 국민의 꿈은 무엇일까? “정치 때문에 울지 않는 나라. 정치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삶. 정치 때문에 싸우지 않아도 되는 시민.” 이 소박한 꿈을 모르는 한, 어떤 정당도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세상소리 ㅣ Mastet of  Satire

Socko

2022년 7월 22일 금요일

‘엽관제’라면 다 괜찮은가…권성동 사적 채용 논란이 남긴 별정직의 딜레마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대통령실 9급 행정요원 채용 논란과 관련해 사과문을 올렸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표현으로 논란이 커진 것은 불찰이라며 청년들에게 상처를 줬다면 사과한다고 했다. 그러나 동시에 선출직 공직자 비서실의 별정직 채용은 일반 공무원 채용과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뿐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장, 국회의원실의 별정직 역시 선출직과 운명을 같이하고 임기가 보장되지 않는 자리라는 설명이었다.

이 해명은 제도적으로는 완전히 틀린 말이 아니다. 대통령실, 장관실, 지자체장 비서실, 국회의원실 등에는 선출직 또는 정무직을 보좌하는 별정직·정무직 인력이 존재한다. 이들은 시험을 거쳐 평생직장처럼 들어가는 일반직 공무원과 다르다. 정치적 신뢰, 업무 호흡, 국정 철학 공유가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공개경쟁시험만으로 뽑기 어려운 영역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들도 당시 대통령실 채용은 비공개 채용, 이른바 ‘엽관제’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바로 그 지점에서 문제가 시작된다. 별정직이 일반 공무원과 다르다는 말은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말이 곧 “누구를 추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엽관제는 정치적 책임을 지는 권력이 자기 철학을 실현할 사람을 쓰는 제도적 관행이다. 그러나 엽관제가 공적 설명 없이 인연, 지역, 후원, 측근 관계로만 보이면 그것은 곧 사적 채용 논란으로 바뀐다. 제도는 ‘정치적 신뢰’를 말하지만, 국민은 그 장면에서 ‘아는 사람 챙기기’를 본다. 이 간극이 이번 논란의 본질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강릉의 한 통신설비업체 대표 아들 우모씨가 대통령실 사회수석실 9급 행정요원으로 근무 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였다. 권 직무대행은 그 청년이 자신의 지역구 사무실에서 자원봉사를 했고, 성실했기 때문에 대선 캠프 참여를 권유했다고 밝혔다. 그는 수개월 동안 대선 승리를 위해 일한 청년이 정년 보장도 없는 별정직 9급 행정요원이 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우씨를 자신이 추천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정치권에서 문제 삼은 대목은 단순히 “추천” 자체가 아니었다. 대통령과 오랜 인연이 있는 지역 인사의 아들이고, 권 직무대행의 지역구와 연결되어 있으며, 다시 권 직무대행이 추천했다는 구조가 겹치면서 ‘공적 채용’과 ‘사적 인연’의 경계가 흐려졌다는 점이었다. 우씨의 부친이 강릉시 선거관리위원으로 알려지면서 이해충돌 논란까지 번졌다. 권 직무대행은 “7급에 넣어줄 줄 알았는데 9급이었다”는 취지의 발언과 “최저임금보다 조금 더 받아 미안하다”는 발언으로 더 큰 역풍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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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별정직’이라는 단어는 방패가 되기도 했고, 동시에 불씨가 되기도 했다. 권 직무대행 쪽 논리는 이렇다. 별정직은 선출직 공직자와 함께 일하는 정치적 보좌 인력이다. 공개채용 일반직과 다르다.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다. 선거 과정에서 함께 일한 사람이 대통령실에 들어가는 것은 역대 정부에서도 있던 일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정부와 이재명 전 경기지사 시절의 별정직 채용 사례를 거론하며 야당의 비판을 ‘내로남불 공세’라고 맞받았다.

그러나 국민 여론의 반응은 법리보다 감정에 가까웠다. 청년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경쟁의 문턱을 넘으려 할 때, 정치권의 누군가는 “대선 때 일했으니 별정직으로 들어갔다”고 말한다. 법적으로 가능한 구조라 해도, 국민이 듣는 메시지는 다르다. “시험 없이 들어갔다”, “추천으로 들어갔다”, “아는 사람의 아들이었다”는 인상이 남는다. 특히 윤석열 정부가 출범 당시 내세운 말이 ‘공정과 상식’이었다는 점에서 논란은 더 커졌다. 법적으로 가능한가보다 더 무서운 질문은 이것이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가.

엽관제는 민주정치에서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제도다. 선거로 권력을 잡은 세력이 자기 정책을 실현하려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일정 부분 데려와야 한다. 미국식 표현으로는 승리한 쪽이 일정한 공직을 나누는 관행이었고, 한국 정치에서도 대통령실·지자체·의원실의 정무직·별정직 인사는 늘 존재했다. 문제는 엽관제가 제도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것이 얼마나 투명하게 설명되고 최소한의 검증을 거치느냐이다. 엽관제가 공적 책임의 장치 없이 작동하면, 그것은 제도가 아니라 연고주의로 보인다.

이번 논란에서 대통령실과 여권은 “대선 캠프에서 일한 청년들의 공로”를 강조했다. 선거 과정에서 헌신한 청년 실무자들이 정부 출범 이후 실무자로 임용되는 것은 역대 정부에서도 있었다는 주장이다. 이 논리에도 현실은 있다. 선거캠프는 수많은 무급·저임금 실무자들의 노동으로 돌아가고, 정권이 출범하면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정부나 국회, 정당의 실무 보좌 인력으로 흡수된다. 정치권 내부에서는 낯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국민이 원하는 설명은 “원래 다 그렇게 한다”가 아니다. 왜 그 사람이어야 했는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어떤 검증을 거쳤는지다.

특히 9급이라는 직급은 논란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여권은 “정년 보장도 없는 별정직 9급”이라며 과도한 특혜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청년층이 받아들인 상징은 달랐다. 9급 공무원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의 상징 중 하나다. 수많은 청년이 시험 하나를 위해 몇 년을 쏟는 현실에서 “별정직 9급”이라는 설명은 제도적 구분이 아니라 감정적 역린을 건드렸다. 일반직 9급과 별정직 9급이 다르다는 법적 설명은 맞지만, 정치적 언어로는 너무 둔했다. 법은 구분했지만, 민심은 구분하지 않았다.

이 사건을 케이스 스터디로 보면 세 가지 질문이 남는다. 첫째, 별정직은 어디까지 공개성과 검증을 요구받아야 하는가. 둘째, 선거 캠프 활동은 공직 임용의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셋째, 정치적 신뢰에 기반한 채용과 사적 인연에 기반한 채용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같은 논란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된다. 여야가 서로의 과거 사례를 꺼내 들며 “너희도 했다”고 싸우는 동안, 국민은 정치권 전체를 향해 “그러니까 다 문제 아니냐”고 묻게 된다.

권성동 직무대행의 사과는 표현에 대한 사과였지만, 국민이 묻고 싶었던 것은 표현만이 아니었다. 별정직 채용 제도 자체가 정말 공적 책임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가, 정치권은 그 제도를 사적 인연의 통로로 쓰고 있지 않은가, 선거 승리의 전리품처럼 공직을 배분하는 관행을 어디까지 용인할 것인가가 더 큰 질문이었다. 이 질문 앞에서 “별정직은 원래 다르다”는 설명은 절반의 답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투명성, 검증, 국민 눈높이다.

결국 이번 논란은 한 청년의 대통령실 채용 문제를 넘어 윤석열 정부 초기 인사 논란의 상징이 됐다. 권력은 사람을 써야 한다. 정치적 보좌 인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공정과 상식을 약속한 정부라면, 그 사람을 왜 썼는지 설명할 책임도 함께 진다. 엽관제라는 말은 공직을 나누는 면허증이 아니다. 별정직이라는 말도 모든 의혹을 지우는 지우개가 아니다. 제도가 권력을 보호하려면, 먼저 국민에게 납득되어야 한다. 납득되지 않는 별정직은 법적으로는 가능해도 정치적으로는 언제든 사적 채용이 된다.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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