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0일 토요일

한국 민주주의에 경고등… 국제사회가 집단 경적을 울린 이유


세상소리 ㅣ Master of Satire


[논평]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민주연맹(IDU) 총회는 이례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특정 국가의 내부 정치 상황을 두고, 그것도 대한민국을 대상으로 한 민주주의·법치 관련 공식 결의안이 채택된 것이다. 이는 외교적 수사나 의례적 우려를 넘어선다. 국제사회가 “경적”을 울린 순간이다.


IDU 의장인 스티븐 하퍼 전 캐나다 총리는 서신을 통해, 회원국들이 한국의 현재 상황을 단순한 정권 교체나 정책 논쟁이 아닌 체제 방향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핵심은 하나다.

한국이 번영의 자유민주 진영에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통제와 억압의 경로로 기울고 있는가.


국제사회의 시선이 날카로워진 이유는 구체적이다. 첫째, 입법 권력의 과도한 집중이다. 다수 의석을 점한 정당이 제도적 견제 없이 국정을 밀어붙이는 구조는, 외부에서 볼 때 ‘효율’이 아니라 일당 지배 위험으로 해석된다.


둘째, 사법부 독립성 논란이다. 특정 정치인을 둘러싼 재판 일정 조정, 수사·기소 선택성 논란은 외국의 민주주의 지표 기관들에게 즉각적인 경고 신호로 읽힌다. 사법은 민주주의의 최후 완충장치이기 때문이다.


셋째, 자유의 영역이다.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최대 수억·수십억 원대 과징금 가능성은 국제 기준에서 ‘비판 봉쇄 수단’으로 분류된다. 종교 영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형 종교단체에 대한 전방위 수사와 압수수색은, 정당성을 떠나 국가 권력이 신념 영역까지 진입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다.

“한국이 중국이나 북한 체제로 경도되고 있느냐”는 의혹은 과장일까?


국제사회는 그렇게 단정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방향성이 위험하다.”

강력한 중앙집중, 사법의 정치화 논란, 표현·종교의 위축은 중국·북한식 체제의 ‘완성형’이 아니라, 그 초기적 구조 신호로 읽힌다는 것이다.


이번 IDU 결의안이 특히 민감한 이유는, 대한민국 보수 정치 세력의 정통성과 존재 필요성을 명시적으로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는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기보다, 민주주의가 작동하려면 균형 있는 대안 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국제적 원칙 선언에 가깝다.


이 상황은 항해 중인 배의 평형추가 고장 나 한쪽으로 급격히 기우는 장면과 닮아 있다. 외부 선단이 동시에 경적을 울린 것은, 배를 접수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전복되기 전에 방향을 잡으라는 신호다.


국제사회는 한국을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예의 바른 침묵의 단계가 끝났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세상소리 ㅣ Master of Satire

Socko

2025년 12월 19일 금요일

"기술의 낙관과 시민의 불안 사이 — ‘시민’이 AI를 통제해야 한다"


세상소리 ㅣ Master of Satire


[논평]

AI 초격변의 시대다. 기술 낙관주의자들은 초인공지능(ASI)을 새로운 번영의 문으로 묘사한다. 손정의 같은 글로벌 기업인은 인류의 한계를 넘어서는 미래를 약속한다. 그러나 기술의 언어가 화려해질수록, 시민의 일상은 그만큼 조용히 흔들린다.


최근 경향신문 사설은 이 간극을 정확히 짚는다. 기술의 미래를 논하는 자리에서 대통령은 ‘국가 경쟁력’이 아닌 ‘시민’을 언급했다. 사설은 이를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정치 언어의 방향 전환으로 읽는다. ‘대통령 이재명’이 아니라 ‘시민 이재명’을 호출한 것이다.


이 표현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AI는 누구를 위해 발전하는가?


이미 우리는 알고 있다. AI는 중립적인 기술이 아니다. 채용 시스템에서 탈락자를 가르고, 콜센터에서 노동을 대체하며, 의료·치안·금융의 판단을 자동화한다. 기술은 효율을 높이지만, 그 효율의 비용은 언제나 약자에게 먼저 전가된다. 실직, 차별, 감시, 책임의 공백. 이 모든 것이 “혁신의 부산물”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문제는 제도다. 내년 시행될 인공지능기본법은 이름과 달리 기본에 충실하지 않다. 고위험 AI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피해가 발생했을 때 시민을 보호할 실질적 장치도 부족하다. 감정 인식, 얼굴 인식 같은 위험 기술은 여전히 회색지대에 놓여 있다. 기술은 질주하는데, 법과 책임은 뒤처져 있다.


이 지점에서 ‘시민’이라는 단어는 정치적 무게를 갖는다. 시민은 소비자가 아니다. 데이터 제공자도 아니다. 시민은 기술 발전의 결과를 떠안는 존재이며, 동시에 그 방향을 결정할 권리를 가진 주체다. 사설이 말하는 시민은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판단의 주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AI 담론은 아직 산업 중심이다. 경쟁력, 투자, 선점, 속도. 이 단어들 사이에서 시민의 불안은 부차적 문제로 밀려난다. 기술을 늦추자는 것이 아니다. 기술을 사회 안에 묶어두자는 요구다. 민주주의는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도, 최소한 방향은 통제해야 한다.


‘시민 이재명’을 응원한다는 말은 곧 이런 주문이다.

대통령이 기술 앞에서 기업의 대변자가 아니라, 시민의 언어로 말하라는 요구.

국가 전략이 성장 그래프가 아니라 삶의 안정에서 출발하라는 요구.


기술은 미래를 약속하지만, 민주주의는 현재를 책임진다.

AI의 시대에 정치가 해야 할 일은 혁신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혁신이 시민을 해치지 않도록 속도를 늦추고 질문을 던지는 일이다.


기술은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그 기술이 어떤 사회를 만드는지는, 여전히 선택의 문제다.



참고문헌

경향신문, “‘시민 이재명’을 응원하며”, 사회 에디터 손제민, 2025.12.18. 



세상소리 ㅣMaster of Satire

Socko

2025년 12월 18일 목요일

로블록스에서 확산되는 젊은 세대의 각성 — 정권이 두려워하는 미

 

로블록스에서 확산되는 젊은 세대의 각성 — 정권이 두려워하는 미래
세상소리 ㅣ Master of Satire

[논평]

이재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거리의 함성이 아니다.

카메라 앞의 구호도, 국회의 공방도 아니다.

그가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젊은 세대가 ‘알아버리는 순간’이다.


최근 십 대를 포함한 대규모의 젊은 세대가 한국의 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이들은 뉴스의 문장과 교과서의 수사를 그대로 믿지 않는다. 대신 질문한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누가 책임지는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이 질문이 위험한 이유는 단순하다. 한 번 깨어난 세대는 다시 잠들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젊은 세대는 집회에 나서지 않는다.

그것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 방식이 더 이상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이 가장 익숙한 공간으로 이동했다. 십 대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Roblox)'다.

여기서 그들은 정치 구호를 외치지 않는다. 대신 세계를 만들고, 메시지를 숨기고, 놀이로 확산시킨다. 이것은 과거 세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의 정치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강력하다.


이 현상을 두고 MBC로 추정되는 NBC는 십 대들까지 ‘GOU(극우)’에 오염되었다고 비난한다. 프레임은 익숙하다. 이해되지 않는 것은 위험으로 규정하고, 통제되지 않는 것은 낙인찍는다. 문제는 이 프레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십 대들은 자신들이 극우인지 아닌지에 관심이 없다. 그들은 왜 자신들의 목소리가 곧바로 혐오와 극단으로 분류되는지를 묻고 있을 뿐이다.


더 아이러니한 장면은 따로 있다.

NBC는 자신들이 이 현상을 비난함으로써, 오히려 그 영상을 대규모로 홍보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젊은 세대는 이를 조롱하며 말한다. “고맙다.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됐다.”

권력은 여전히 통제하고 있다고 믿지만, 현실에서는 확산의 엔진에 연료를 붓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정권이 불편해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 세대는 동원되지 않는다. 설득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 죄책감 정치, 공포 프레임, 낡은 이념 언어에 반응하지 않는다. 그들은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움직이며, 스스로 문화를 만든다.

이것은 정권에게 가장 치명적인 변수다.


세상소리는 단언한다.

대한민국의 위기는 거리에서 폭발하지 않는다.

플랫폼에서, 놀이에서, 질문에서 조용히 증식한다.

그리고 그 흐름은 이미 시작되었다.




세상소리 ㅣ Master of Satire

Socko

“실용”이라는 가면: 고든창이 던진 ‘중공 침투’와 이재명 정권의 침묵

 

'실용'이라는 가면: 고든창이 던진 ‘중공 침투’와 이재명 정권의 침묵
세상소리 ㅣ Master of Satire

[논평]

고든 창이 던진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중국공산당의 침투, 한국은 안전한가?”

그리고 그 질문의 끝에는 불편한 이름 하나가 놓인다. 이재명 정권이다.


고든 창(Gordon G. Chang)은 음모론자가 아니다.

그는 20여 년간 중국공산당(CCP)의 구조와 전략을 추적해온 미국 내 대표적 중국 비판론자이며, “침투는 군함이 아니라 제도와 언어로 온다”는 경고를 반복해왔다. 그의 문제 제기는 늘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자유국가 내부에서 ‘자발적 협조자’가 등장하는 순간, 침투는 완성 단계로 접어든다는 것이다.



논란은 여기서 시작된다. 이러한 역사 비유가 경고인가, 아니면 선동인가라는 질문이다. 비유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감정이 아니라 사실의 연결이 필요하다. 어떤 정책이, 어떤 제도를, 어떤 방식으로 위축시켰는지에 대한 구체가 빠질 경우, 비유는 설명이 아니라 자극이 된다. “히틀러와 닮았다”는 선언만 남고, 독자는 “그래서 지금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중국공산당의 대외 전략은 명확하다.

무력 충돌 이전에 정치 엘리트, 사법 시스템, 언론 담론, 시민단체, 학계를 먼저 장악한다. ‘친중’이라는 말은 이 단계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대신 실용, 균형, 국익, 탈이념이라는 단어들이 포장지처럼 사용된다. 문제는 그 포장지를 벗기면 늘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 중국에 불리한 질문은 사라지고, 중국에 유리한 침묵만 남는다.


이 지점에서 이재명 정권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한 외교 노선 차이가 아니다.

중국 인권 문제에 대한 지속적 침묵, 대만·홍콩 사안에서의 모호한 태도, 안보 사안에서 반복되는 ‘전략적 애매성’. 이 모든 조각이 우연이라면 좋겠지만, 패턴은 우연을 가장한 의도일 가능성이 높다.


고든 창의 시각에서 가장 위험한 국가는 중국과 직접 대치하는 국가가 아니다.

중국의 언어를 빌려 스스로를 설득하는 국가다.

“미국도 문제다”, “양쪽 다 거리를 둬야 한다”, “경제가 우선이다”라는 말은 균형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선택을 미루는 사이 중국의 시간표에 편입되는 과정일 뿐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것이다.

이재명 정권은 중국공산당의 피해자인가, 아니면 편의적 공존자인가.

혹은 더 나아가, 체제 경쟁의 국면에서 ‘부역’이라는 단어를 회피한 채 역할을 수행하는 존재는 아닌가.


세상소리는 단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침투는 늘 “우린 그런 의도가 없다”는 말과 함께 시작되었고,

자유는 늘 “아직 증거가 없다”는 말 속에서 조금씩 사라졌다.




세상소리 ㅣ Master of Satire

Socko

2025년 12월 16일 화요일

조은석, 윤석열 특검 수사 - 조작된 서사인가, 허술한 권력 장악인가

조은석, 윤석열 특검 수사 - 조작된 서사인가, 허술한 권력 장악인가

세상소리 ㅣ Master of Satire


[논평]

특검 수사가 국가를 지키는 장치인지, 정치적 서사를 완성하기 위한 도구인지는 언제나 결과가 아니라 논리의 완성도로 판단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관련 내란 혐의를 둘러싼 조은석 특검의 수사 결과는 그 논리적 완성도에서 심각한 질문을 남긴다. 문제는 계엄의 정당성 여부가 아니라, 제시된 증거와 결론 사이의 간극이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이 2023년 10월 이전부터 비상계엄을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1년 이상 준비된 권력 장악 시도치고는 계엄 발동 과정이 지나치게 엉성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실제 실행 단계에서 위치조차 명확히 파악하지 못해 포털 검색에 의존했다는 정황은, 장기 기획된 내란 시나리오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준비된 쿠데타와 즉흥적 혼선은 동시에 성립하기 어렵다.

군 인사와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수첩 역시 마찬가지다. 특검은 이 수첩을 계엄 설계의 핵심 증거로 제시했지만, 당사자가 법정에서 밝힌 진술은 정반대의 그림을 보여준다. 준비되지 않은 내용을 사후적으로 엮어 하나의 스토리로 만들라는 요구가 있었다는 주장은, 증거가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증거에 맞추는 수사였는지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킨다.



선거관리위원회 점거 시도에 대한 특검의 해석도 논리적 균열을 드러낸다. 국회 기능 정지를 목적으로 한 계엄이었다면 최소한의 병력 규모와 지속적 통제 행위가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진 촬영 후 철수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점에서, ‘체제 전복’이라는 결론은 과도해 보인다. 더구나 메모의 문구가 ‘요원’에서 ‘국회의원’으로 뒤바뀌며 해석이 확장된 정황은 수사의 신뢰도를 스스로 갉아먹는다.

북한의 무력 대응을 유발하려 했다는 주장 역시 과거 공작 정치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특정 메모 한 줄을 근거로 국가적 도발 시도를 단정하는 방식은, 의혹을 입증하는 수사라기보다 서사를 강화하는 해석에 가깝다. 증거의 누적이 아니라, 해석의 누적이 결론을 끌고 가는 구조다.

이 사건의 핵심은 윤 전 대통령의 판단이 옳았는지가 아니다. 문제는 특검 수사가 법적 진실을 밝히는 과정인지, 아니면 정치적 반대 세력을 ‘내란 프레임’ 안에 가두기 위한 구성물인지에 대한 물음이다. 수사가 조작이 아니라면, 조작처럼 보이지 않아야 한다. 논리가 허술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 또 다른 불신을 낳는다.

특검의 수사 결과가 훗날 스스로에 대한 수사 목록이 될 것이라는 경고는 가볍지 않다. 법치는 결론의 크기가 아니라 과정의 정직함으로 유지된다. 그 선이 무너질 때, 국가가 감당해야 할 비용은 개인의 유불리를 넘어선다.


세상소리 ㅣ Master of Satire


Socko

2025년 12월 15일 월요일

이재명 · 연산군 · 히틀러 비유는 경고인가, 선동인가

이재명·연산군·히틀러 비유는 경고인가, 선동인가



[논평]

최근 한 유튜브 강의에서 진행자는 이재명이라는 현 정치인을 조선의 연산군, 그리고 나치 독일의 히틀러에 비유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제기했다. 이 비교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강의의 핵심 주장은 이렇다. 언론 통제, 표현의 자유 위축, 사법 압박이 반복될 경우 민주주의는 역사적으로 언제나 파국으로 향해 왔다는 것이다.

진행자는 구체적 사례를 든다. 연산군이 비판을 막기 위해 사관원을 폐지하고 신하들에게 ‘말조심’을 강요했던 역사, 히틀러가 언론을 선전 도구로 만들며 반대 세력을 제거했던 과정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는 오늘의 정치에서도 비판 언론과 반대 진영을 압박하는 움직임이 반복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비교가 과도한지 여부와 별개로, 문제 제기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권력과 비판의 관계다.



논란은 여기서 시작된다. 이러한 역사 비유가 경고인가, 아니면 선동인가라는 질문이다. 비유가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감정이 아니라 사실의 연결이 필요하다. 어떤 정책이, 어떤 제도를, 어떤 방식으로 위축시켰는지에 대한 구체가 빠질 경우, 비유는 설명이 아니라 자극이 된다. “히틀러와 닮았다”는 선언만 남고, 독자는 “그래서 지금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이 지점에서 또 하나의 모순이 발생한다. 역사 비유를 비판하는 글이 다시 추상적 비판으로 흐를 때다. ‘선동의 위험성’, ‘비유의 책임’을 말하면서도 정작 누가, 어떤 발언을 했고, 왜 문제가 되는지를 밝히지 않으면, 독자는 다시 묻게 된다. “그래서 누가 뭘 어쨌다는 건가.” 비판에 비판이 덧씌워지며 논점은 한 단계 더 멀어진다.

한국 사회에서 이런 방식은 특히 위험하다. 우리는 구체가 빠진 논쟁을 흔히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겨왔다. 그 결과 남는 것은 판단이 아니라 피로다. 한쪽은 ‘독재의 징후’를 말하고, 다른 쪽은 ‘선동’을 말하지만, 그 사이에서 검증 가능한 사실의 목록은 사라진다. 공론장은 토론이 아니라 레토릭의 충돌장이 된다.

역사 비유는 금기가 아니다. 그러나 비유가 힘을 가지려면 현재의 사건과 제도에 대한 구체적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 동시에 그 비유를 비판하는 글 역시 같은 기준을 지켜야 한다. 추상을 비판하면서 추상으로 도망치는 순간, 비판은 자기모순에 빠진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센 비유도, 더 도덕적인 경고도 아니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해석이며, 어디까지가 추론인지를 분리해 제시하는 일이다. 민주주의는 과격한 단정이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구체적인 질문에서 살아남는다.



세상소리 ㅣ Master of Satire


Socko

2025년 12월 14일 일요일

우연이라는 이름의 정치 — 게이트는 덮이지 않는다, 속도만 늦춰질 뿐이다

 

세상소리 ㅣ Masterof Satire

[논평]

우연이라는 이름의 정치 — 게이트는 덮이지 않는다, 속도만 늦춰질 뿐이다.


사건은 종종 우연처럼 발생한다. 겹치면 겹친 대로, 어긋나면 어긋난 대로 흘러간다. 정치는 이 우연을 통제하지 않는다. 정치가 잘하는 것은 단 하나, 우연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관리’하는 일이다. 통일교 게이트, 현대차의 강경한 노사 기조, 금속노조 파업, 그리고 장관급 인사들의 거취 논란. 이 모든 것이 하나의 설계도에서 나왔다고 말하면 음모론이 된다.

그러나 이것들이 각자 다른 계산에서 동시에 선택된 결과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정치는 언제나 이렇게 말한다. 대개 그 말은 사실이다. 문제는, 연관이 없다는 말이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1. 통일교 게이트, ‘정리’와 ‘해결’ 사이

먼저 선을 분명히 그어야 한다. 현재까지 언론 보도와 공식 입장을 종합하면, 통일교 관련 정치권 논란은 여전히 ‘의혹 제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일부 장관급 인사의 이름이 언론에 거론되었고,

  • 누군가는 사의 표명 보도가 있었으며
  • 누군가는 강하게 연루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 국면은 아직 

  • 수사 결과가 확정된 상태도 아니고
  • 법적 책임이 판결로 정리된 단계도 아니다.

즉, 지금 벌어지는 일은 ‘책임의 확정’이 아니라 ‘정치적 부담의 관리’다. 정치는 이 구간에서 익숙한 선택을 한다. 사직이든, 사의 표명이든, 해명이든 중요한 것은 결과다. 사실의 진위와 무관하게, 인물의 거취가 논의되는 순간 구조적 질문은 속도를 잃는다. 정치가 덮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진실에 접근하려는 시간이다.



2. 혼란은 정치의 적이 아니라 자원이다

정치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혼란이 아니다. 정치권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여론의 집중이다. 노조 파업이 격화되고, 대기업 노사 갈등이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경제 뉴스가 사회면을 잠식하면 게이트는 자연스럽게 배경음이 된다.

누군가는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렇다. 정치는 혼란을 만들 필요가 없다. 혼란이 발생하면, 그것을 가장 먼저 계산에 넣을 뿐이다.


3. 현대차와 노조, 공모가 아닌 교차

현대차의 강경한 태도는 이념이 아니라 구조의 변화에서 나온다. 미국 공장 가동 확대, 북미 공급망 재편, 역수입 가능성. 과거처럼 국내 파업이 곧바로 글로벌 생산 중단으로 이어지지 않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금속노조 역시 정치적 혼란기를 읽는다.

정권의 대응 부담이 커지는 시점은 언제나 투쟁 비용 대비 효과가 극대화되는 순간이다. 여기엔 공모가 없다. 다만 서로에게 지금이 나쁘지 않은 시점일 뿐이다.

  • 기업은 “버틸 수 있다”고 판단했고
  • 노조는 “지금이면 싸움이 커진다”고 판단했으며
  • 정치권은 “지금이면 집중이 분산된다”고 판단했다

이것이 하나의 음모일 필요는 없다. 정치는 이 동시성을 가장 효율적으로 소비한다.


4. 그래서 게이트는 늘 같은 방식으로 끝난다

정치 스캔들은 언제나 비슷한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 “연관성은 없다”
  • “수사 중이다”
  • “개인의 문제다”
  • “국정 안정이 우선이다”

결과적으로 구조는 남고, 얼굴만 바뀐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듣게 된다.


결론 — 정치의 진짜 기술

정치는 전능하지 않다. 모든 사건을 설계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한다. 다만 정치에는 이 능력이 있다. 겹치는 순간, 그것을 ‘정리’로 바꾸는 능력그갸그래서 되는 일은 된다.안 되는 진실은, 안 되게 된다. 그리고 다음 게이트가 올 때까지, 우리는 또 다른 우연을 기다리게 된다.


참고문헌 (References)

  1. 연합뉴스, 「통일교 관련 정치권 의혹 보도 종합」
  2. Reuters, South Korea minister offers to quit amid allegations of getting funds from Unification Church
  3. Channel NewsAsia, South Korea probes alleged religious group–politics links
  4. 현대자동차그룹, 북미 생산 전략 및 HMGMA 공식 자료
  5. 금속노조 중앙집행위원회 파업 관련 공식 성명
  6. 최장집, 『민주주의의 민주화 이후』
  7. 김호기, 「한국 정치 스캔들의 책임 전가 메커니즘」



세상소리 ㅣ Master of Satire


Socko


이재명 대통령 “출퇴근 시간대 노인 대중교통 무료 이용 제한 검토" ... “지옥철의 노인들, 요금은 청년이 낸다?”

  노인 무료 이용 제한 논쟁이 촉발한 사회적 갈등과  정책적 고민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미지/daeguilbo [전략 논평]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아직 ‘검토’ 단계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미 하나는 분명해졌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은 더 이상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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