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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 기소와 김현태 전 707특임단장 1심 징역 12년. 한쪽에는 정보와 연락망의 열쇠, 다른 한쪽에는 병력과 지휘의 열쇠가 있었다. 12·3 계엄의 ‘비밀의 방’에는 과연 몇 개의 열쇠가 있었을까./composed: chosun-daum |
12·3 비상계엄을 둘러싼 두 사람의 운명이 극단적으로 갈렸다. 한 사람은 당시 계엄의 내부 사정을 폭로하며 ‘내부고발자’로 불렸던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고, 다른 한 사람은 707특수임무단을 이끌고 국회에 투입됐던 김현태 전 대령이다. 그런데 홍 전 차장은 2차 종합특검에 의해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김 전 대령은 27일 1심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
홍장원은 아직 유무죄가 가려지지 않았지만, 정치적 이미지로만 보면 ‘내부고발자에서 피고인으로’, 김현태는 ‘계엄 현장의 군인에서 중형 선고자로’ 이동했다. 여기서 나오는 냉소가 바로 “결국 토사구팽인가?”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두 사건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 하나는 아직 재판 전이고, 다른 하나는 1심 판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공개된 홍장원 공소장을 보면 이른바 ‘계엄의 비밀의 방’문이 하나 더 열린다. 특검은 홍 전 차장이 계엄 당일 오후 11시50분쯤 산하 부서장 회의를 열고 계엄 관련 국내 언론·댓글·SNS의 특이 여론을 수집하도록 지시했으며, 일부 직원의 반발에도 수행을 독촉했다고 적었다.
또 특검은 홍 전 차장이 계엄 수행과 관련해 산하 조직에 순차적으로 지시했고, 국군방첩사령부·경찰청과 연락망을 구축하며 경찰청 상황실에 인원을 파견하도록 했다고 봤다. 여기에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으로부터 체포 대상자 명단을 전달받고 위치 확인을 요청받았다는 내용까지 공소장에 담겼다. 홍 전 차장 측은 일부 자료만 발췌됐다며 “매뉴얼 점검” 취지였다고 반박하고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계엄 비밀의 방’의 열쇠가 서로 달랐다는 얘기다. 김현태에게 주어진 열쇠는 너무나 물리적이었다. 병력을 태우고 국회로 가서 유리창을 깨고 내부 진입을 시도하고, 분전함 전원을 내리는 등 국회의 계엄해제 요구안 의결을 막으려 했다는 것이 1심 재판부가 인정한 내용이다.
반면 홍장원의 공소장에 등장하는 열쇠는 훨씬 정보기관적이다. 연락망, 여론 수집, 정보 공유, 체포 대상자 위치 확인, 산하 부서 지시.하나는 국회라는 문을 병력으로 열려 했고, 다른 하나는 정보와 연락망을 통해 계엄의 상황실 문을 열었다는 그림이다. 물론 이것 역시 특검이 주장하는 범죄사실의 구조이지 홍 전 차장의 유죄가 확정됐다는 뜻은 아니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같은 계엄인데도 ‘거부의 순간’과 ‘가담의 순간’을 어디에 설정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다. 김현태 전 대령은 결국 국회에 병력을 투입했고, 법원은 그 행동을 매우 무겁게 평가해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사용해야 할 군사력을 개인과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해 사용했다고 질타했다. 김 전 대령은 판결 당일 항소했다.
반면 홍장원 사건에서는 특검이 공소장에 적은 일련의 지시가 실제로 내란의 중요임무 수행에 해당했는지, 아니면 정보기관 책임자로서 계엄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하기 위한 통상적 조치였는지가 앞으로 법정에서 다퉈질 핵심이다. 결국 두 사람 모두 ‘계엄의 방’에 있었지만, 어떤 열쇠를 들고 어느 문까지 갔는지가 재판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홍장원 사건을 두고 ‘배신자 이미지’와 ‘토사구팽’이라는 정치적 언어가 충돌하는 것도 흥미롭다. 홍 전 차장은 앞선 내란특검 수사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싹 다 잡아들이라’는 지시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으로부터 주요 정치인 체포 명단을 받았다는 증언을 하면서 핵심 참고인으로 주목받았다. 그런데 종합특검은 이제 그를 오히려 계엄 가담 혐의로 기소했다. 특검과 홍 전 차장의 입장이 완전히 뒤집힌 셈이다. 다만 이를 곧바로 “배신했기 때문에 버림받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위험하다. 수사기관의 판단이 달라진 것이고, 이제 법원이 그 공소사실을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김현태를 둘러싼 ‘참군인’ 이미지는 더욱 복잡하게 봐야 한다. 온라인과 일부 지지층에서는 그를 ‘참군인’으로 부르지만, 1심 법원은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김 전 대령이 최정예 병력을 직접 국회에 진입시키고 봉쇄를 지휘한 점을 중하게 평가했고, 법치주의와 헌법질서를 폭력으로 무력화하려 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참군인’이라는 표현은 법원의 판결이 아니지만, 동시에 이 판결이 확정된 것도 아니다. 김 전 대령은 항소했기 때문에 최종 법적 평가는 아직 남아 있다.
결국 이번 홍장원 공소장과 김현태 12년 판결이 던지는 진짜 질문은 “누가 영웅이고 누가 배신자인가”가 아니다. 계엄이라는 거대한 사건 속에서 정보기관의 지시, 군의 명령, 개인의 판단, 명령 거부와 이행의 경계가 어디에 있었는지를 끝까지 복원할 수 있느냐는 문제다. 계엄의 비밀의 방에는 열쇠가 하나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군에는 병력이라는 열쇠가 있었고, 정보기관에는 정보와 연락망이라는 열쇠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특검이 공개한 홍장원의 공소장은 그동안 닫혀 있던 또 하나의 문을 열고 있다. 하지만 그 문 안에서 발견되는 모든 것이 곧 유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법원이 해야 할 일은 누가 어느 문을 열었고, 그 문을 열 당시 무엇을 알고 있었으며, 어디까지 들어갔는지를 하나씩 따져 묻는 것이다. 그래야 ‘내부고발자에서 피고인’이라는 홍장원의 반전도, ‘참군인에서 징역 12년’이라는 김현태의 반전도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법적 사실로 정리될 수 있다.
Socko/Gho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