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소리] 역사를 연구하거나 역사 가르침을 업으로 하는 인사들을 보면, 홍범도 장군에 대한 공산주의 평가에 대해, 정부 여당 인사들과는 다소 결이 다른 점이 있다.
공산주의 사고와 공산당원이었음이 분명하다는 이종섭 국방장관 등과는 달리, 역사 분야에 전문성이 있다는 측은 독립운동, 항일 투쟁 영웅, 공산권 소련 거주했지만 공산당 활동은 편의적이었다는 주장이 맥을 이룬다.
공산주의나 공산당원 활동은 1917년 볼셰비키 10월 혁명이 극동을 휩쓸던 1921년이 주목된다. 레닌 혁명 세력 적군과 함께, 극동에서 공산당과 협력해 독립운동하던 그를, 공산주의자로만 봐서는 안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공산 세력과 협력하지 않고, 독립운동 활동할 수 있었지 않냐는 주장은 역사적 가정일 뿐이다. 만주와 중국 내륙 지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과는 달리, 일생에 걸쳐 소련 영내를 떠나지 않았던, 그의 행적에 대한 평가는 다소 안일하다.
일제 영향력이 적은 소련 영내에서 독립운동 활동하기가 수월해서 선택한 일이지, 공산주의나 공산당 활동이 목적이 아니었다는 시각이다. 이에 따라, 홍범도 장군을 공산주의자로만 봐선 안 된다는 시각은 타당해 보인다. 항일 독립투사에 봉호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도 맞다.
북한 공산 정권이 들어설 거로 그가 알았다면, 공산당 입당했겠느냐는 일부 학자도 있다. 봉호동 전투 독립운동 영웅 모습 외에, 정작 공산주의 활동과 공산당원이었던 그를 재평가하는 일은 시대에 따라 단순하지 않다.
공산권 블록에 속한 북중러, 특히 남쪽을 겨냥 핵무력 개발에 집중하는 북한 공산주의를 도외시 할 수는 없다. 공산주의에 동조했거나 공산권에 우호적인 세력에 대해, 호전적인 공산 북한 정권 위협을 무시하고 대하기는 쉽지 않은 정치사회 변화다.
육사 홍범도 흉상을 독립기념관으로 이전하겠다는 국방부 방침이 뜻밖이긴 하다. 하지만, 자유민주 체제를 위협하는 친북 친공세력을 향해 반국가 세력이라고 한다면, 공산당 이력 소유자 평가는 다소 냉정할 수도 있다.
한국사 스타 강사 얘기를 스포츠경향이 10일 취재했다. 전한길과 황현필로 대표되는 모양이다. 전한길 강사 경우, 독립군들 사이에서도 거의 전설적인 인물에다, 봉오동 전투로 영웅 중의 영웅으로 불렸다는 홍범도 장군 얘기다.
틀리지 않는 영웅 중의 영웅이다. 독립군을 이끈 불세출의 장군 호칭도 틀리지 않다. 정치적 문제가 개입되면, 이런 이미지가 변질돼 여야가 싸우고 국민도 나뉘어, 뭐라고 말하기 어려워 참고 있었다는 그다.
변질된 모습은 없다. 공산주의 이력에 대한 평가가 다를 뿐이다. 황현필 강사 경우, 홍범도 흉상 철거에 울컥했다고 전해졌다. 노태우, 김영삼, 박근혜, 문재인 전 대통령 등이 유해 봉환에 애를 썼고,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을 명명할 정도로 독립군 영웅이었다는 대목이다.
변질해 가는 한국 사회에 의문을 제기한 황현필 강사다. 역사를 왜곡하는 일부 세력을 지칭했다. 한국 역사의 뿌리 왜곡에 대해 불만이 많은 그였다. 봉오동 전투 전승 100주년 기념 우편 홍보차, 홍범도 장군과 봉오동 전투를 칭송하는 영상 촬영한 적이 있다는, 최태성 스타 강사 얘기도 있다.
변화된 정치사회 평가는 지난달 31일 국회 예결위에서, 주적과 전투해야 하는 군함 이름을 공산당원이었던 사람으로 정하는 일은 적절치 않다는, 한덕수 총리 얘기가 대표적이다.
이를 정면 비판한 학자 얘기가 있다. 홍범도 연구 권위자라는 반병률 명예교수를 인터뷰했던 경향신문 9일자 보도다. 머슴 신분에 가족까지 희생한 평생 독립운동가, 봉호동 전투 영웅 얘기가 중심이다. 아무래도, 전쟁 얘기가 나오는 공산 북한과 대척점에 선, 한반도 현실을 무시할 수 없는 정부 입장에 대해 비판적이다.
사람의 행동엔 정리된 사고, 달리 이념이 없을 수 없다는 윤석열 대통령 얘기가 전해졌다. 생각 없이 행동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이다. 주어진 여건에 따라, 사람은 자신에게 유익한 입장에서 판단을 내리는 경향이 있다. 유명한 독일 철학자 니이체 또한, 사람은 영리한 동물로 유익함을 쫓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중국, 만주, 연해주, 극동 일대에 걸쳐, 홍범도 장군에게 항일 독립운동하기에, 가장 유익하다고 판단한 곳이 공산권 소련일 수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는 반병률 명예교수 인터뷰 내용이다. 홍범도가 공산주의자입니까? 반문이라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항변일 수 있다. 그렇다고 홍범도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딱히 입증도 하기 어려운 그다
정황상 공산주의자로만 보지 말라는 반병률 교수 얘기인 듯싶다. 항일 독립운동가, 봉오동 전투 영웅, 여기에 대해선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핵무력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공산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북한 정권과 전쟁이 끝나지 않은 한반도 사정 때문이다. 과거 공산주의 활동과 공산당원이었던, 홍범도 장군 평가가 그래서 훗날을 기약해야 하는, 국제 정치사회 변화다.
윤석열 대통령, 이종섭 국방장관, 박민식 보훈장관 등도 지금의 홍범도 장군을 평가한 잣대 그대로, 100년 뒤 시대 상황에 따라, 민족 반역으로 평가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추론을 제기한 반병률 교수다.
그의 말은 맞다. 그래서 역사는 살아 있고 해석은 늘 열려있다.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고, 시대에 맞는 평가는 고정돼 있지 않다. 한 인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이유도, 그가 어떤 사고와 행동했나에 따라 평가되고, 역사적 흔적에 대한 해석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우리가 아는 역사적 인물들이 100년 후엔 아무 의미가 없을 수 있다. 영웅을 기리고 역사적 의미를 찾는 일은 시대 상황에 맡겨져 있다. 근현대 세계사를 지배했던 레닌-스탈린 공산주의가 지금 무슨 의미를 주고 있나, 마찬가지다.
반공, 반북 등의 정치적 목적이 시대 상황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한 시대를 움직이는 정치사회 현실이 없다고 말하는 자세는 너무 순진하다. 왕정, 공화, 민주 정치 체제가 다양하게 현존하는 국제사회다. 민주 용어만 해도, 공산체제나 자유체제 각기 쓰는 정치사회 목적이 있다.
역사적 흔적, 학계 논란이 그래서 중요하다. 홍범도 장군 평가에 빼놓을 수가 없어진, 자유시 참변 논란 해석은 정치사회 체제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홍범도는 공산주의자 주장의 허술함이 서서히 드러났다는, 반병률 교수 얘기다. 공산주의자 아니라고 할 별다른 이유가 있는지 모르겠다. 공산주의자로서 제대로 평가를 받고, 역사적 업적이 재평가되는 과제는 100년 후 별 의미가 없을 수도 있고, 또 다른 의미로 재조명될 수도 있는 일이다.
봉오동 전투 영웅, 항일 독립운동 업적 등이 과거 군사독재 시대와는 다른 평가가 이뤄진 점도 고려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를 거치며 군사독재 시대 반공사상과 국가보안법 의미가 약화된 사회 변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을 바라보는 한민족 사고가 고조되면서, 이념 갈등보다 평화통일 분위기가 커진 정치사회 변화였다. 변화된 시대 상황에 따라, 이젠 또 다른 변화로 움직이고 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달라지는 이유다.
반병률 사학자 의견에 따르면, 변화된 해석은 3가지로 요약된다. 신분, 항일 투쟁 시기, 가족 요인이다. 이 3가지 요인이, 지난 정치사회 평가와 해석과는 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유생, 양반, 고급관료 출신이 아니라, 머슴 신분이었음으로 계급적, 신분적 차별을 이유로 약자를 억압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체화된 사람으로 평가됐다. 달리 해석해 보면, 유생, 양반, 고급관료 출신들에 비해, 계급 투쟁과 신분 해방을 주장하는 공산주의에 공감대가 크지 않았을까.
지금 와, 공산주의 이념이 그렇게 중요하나. 그의 봉오동 전투 영웅 모습과, 항일 독립운동 의미보다 크지 않을 것이며, 공산주의 공감도 소련 영내 생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동화된 것뿐이란 해석도 나름 틀리진 않다.
두 번째로 홍범도 장군 항일 투쟁 시기와 그의 궤적을 지적한 반병률 사학자다. 1922년 모스크바서 열린 원동민족혁명단체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쓴, 입국신고서를 사례로 들었다. 직업은 의병, 입국목적과 희망은 고려독립이라고 적은 홍범도 장군 사례였다.
의병 기간은 28년으로 전했다. 1894년 의병활동, 명성황후 시해 계기로 항일운동 시작한 후, 홍범도 장군만큼 오랜 독립군 활동한 인물도 드물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레닌 주도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이후다. 1921년 자유시 참변은 그로부터 4년이었고, 그곳도 극동이었다.
원동민족혁명단체회의 명칭에서 보듯이, 극동이 원동으로 표현되어 있다. 모스크바 지휘부가 보기엔, 동쪽 끝 공산 혁명을 조속히 마무리 할 입장이었다. 항일 독립운동하던 단체들을 회유해, 공산당 중심으로 정리할 필요가 시급했던 레닌 혁명 정부로 이해된다. 홍범도 장군이 회의 참석차, 모스크바 방문했던 일이었지만, 레닌 혁명 정부로선 공산주의에 우호적인 소수민족 문제였다.
마지막으로 홍범도 장군 가족 얘기다. 실명이 알려지지 않은 부인 단양 이씨, 부친과 함께 항일 투쟁하다 목숨을 잃은 큰아들 홍양순, 독립군 활동했다는 둘째 아들 홍용환 등이다. 가족을 회유하기 위해, 조선인 김원홍, 임재덕 등 일진회 간부들의 집요한 공작이 전해졌다. 머슴 출신으론 드물게 집안 전체가 항일 투쟁했다는 평가다.
진짜 명문가란 평가다. 홍범도 장군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정부 여당에 대한 분노 표시다. 핵전쟁 위협을 노골화하고 있는, 공산 북한 정권을 대하는 윤 대통령으로선, 평화통일 분위기에 몰입했던 문재인 정부와는 사뭇 다른 변화된 모습을 취하고 있다.
자유시 참변은 없었던 일이 아니다. 공산 혁명을 이끌던 소련 적군 세력을 무시할 수 없고, 활동도 소련 영내에다 극동 공산 혁명을 마무리하려던 레닌 혁명 정부에 협조했던 일은 부정하기 어려워 보인다.
원하든 원치 않았든, 레닌 공산 극동 혁명 세력에겐 홍범도 장군이 적임자였다고 판단했듯 싶다. 소련 연해주, 중국 상해 일대 독립군 세력 간 이념 다툼으로 비치기도 한다. 항일 독립운동 목표는 같지만, 어떻게 독립운동하느냐에 있어선 달라 보였다. 홍범도 장군 등 간도 독립군 지도자 5명이 레닌 공산 세력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과 공동명의로 발표했다는, ‘우리 군중 노동 군중에게’ 문건이다.
일본 제국주의 원수 세력 척결 명분이나 목표는 같은데, 동족 사이에도 있다는 수적, 즉 원수인 적 표현이 들어있다. 그 내용은 공산 혁명 원론에 가까운 계급혁명과 신분 해방에 있었다. 자세히 말한다며, 관료, 유산자, 의홍내백을 으뜸 적으로 삼았다.
외홍내백은 겉으로는 붉지만 속은 가면 공산당원들이란 뜻이다. 문건만 보면, 홍범도 장군이 자유시 참변에 가담한 것처럼 보인다는 반병률 사학자 평가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주장이지만, 공산주의 사상과 계급 투쟁이 관련되어 보인다.
자유시 참변으로 수많은 독립군 피해가 생겼고, 재판 과정에서 판관으로 임했다는 기록이 알려져 있다. 레닌 혁명 정부 극동 공산 세력에 협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홍범도 장군 위치로 봐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레닌 혁명 정부에 협력했지만, 항일 독립운동하기에 불가피성은 고려되어야 한다는 얘기는 맞을 수 있다. 스탈린 치하에서도 소련 영내에 생존하다, 공산당원으로 활동한 전력에 대해서도, 불가피성 또한 맞을 수 있다.
공산주의자 아니라고 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공산주의자로 활동한 이력이 불가피하든, 편의적이든, 어쩔 수 없어 협력했든, 소련 영내에서 노후까지 지내며 공산당원이었다는 점은 합리적 추론이다.
봉호동 전투 영웅, 항일 독립운동 업적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인정하되, 변화되어 가는 정치사회 현상에 따라 그 의미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역사적 인물에 대해 달라지는 평가와 해석은 무릇 홍범도 장군 하나 뿐은 아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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