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미국 독립 250주년을 맞아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이 담긴 기념 여권과 250달러 지폐 구상, 백악관 UFC 행사 등/image: afp-gettyimages |
그런데 미국의 250번째 생일을 앞둔 워싱턴의 풍경은 묘하다. 한쪽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얼굴이 들어간 기념 여권이 공개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의 초상이 담긴 250달러 지폐 구상이 거론된다.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는 트럼프의 80번째 생일과 미국 250주년을 함께 기념하는 UFC 행사 구조물이 세워졌고, 일부 언론은 이를 ‘Arc de Trump’라고 불렀다.
기념 여권은 실제로 제한 수량으로 발급될 예정이지만, 250달러 지폐는 아직 입법 제안과 검토 단계다. 현행 미국 법은 살아 있는 인물을 화폐에 넣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 트럼프 얼굴이 들어간 지폐가 실제 통화로 발행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폐가 실제 나오느냐가 아니다. 국가의 기념물을 개인의 얼굴과 이름으로 채우려는 상상 자체가 이미 시대의 분위기를 보여준다.
애국심은 원래 정치적 언어다. 미국 대통령들은 위기의 순간마다 애국심을 호출했다. 하지만 그 방식은 서로 달랐다. 조지 워싱턴은 초대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선택으로 공화국의 원칙을 증명했다. 대통령이 왕이 아니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1976년 미국 건국 200주년 당시 제럴드 포드는 또 다른 방식으로 애국심을 보여줬다. 워터게이트 이후 미국 사회가 깊은 불신에 빠져 있던 시기, 그는 자신의 이름을 새긴 거대한 건축물 앞에 서지 않았다. 대신 토머스 제퍼슨의 저택 몬티첼로에서 이민자들의 귀화식을 주재했다. 미국을 사랑한다는 것은 국가를 자기 이름으로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 새 시민을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메시지였다.
트럼프의 애국심은 다르다. 그것은 공동체의 기억보다 개인의 존재감을 중심에 둔다. 국가의 250주년은 미국인의 역사적 자산이지만, 트럼프식 연출 속에서는 점점 “트럼프 시대의 장식물”처럼 보인다. 여권의 얼굴, 기념화폐 구상, 백악관 UFC 행사, 연방 건물 명명 논란이 모두 하나의 방향을 가리킨다. 국가는 축하의 주체가 아니라 개인 브랜드의 무대가 된다.
이것은 단순한 허영의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애국심은 시민을 묶는 언어여야 한다. 그러나 애국심이 특정 지도자에게 대한 충성으로 바뀌는 순간, 반대자는 국가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처럼 취급되기 시작한다. “나라를 사랑한다”는 말이 “나를 지지하라”는 말과 겹쳐질 때, 공화국은 위험해진다.
조지 W. 부시 정부 시절 9·11 이후 “우리 편이 아니면 테러리스트 편”이라는 언어가 등장했을 때도 미국 사회는 애국심과 충성심의 경계를 경험했다. 그 시대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감시와 반대 의견 억제가 확대된 시기였다. 트럼프의 시대는 그보다 한 걸음 더 나간다. 국가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국가를 대표한다고 주장하는 특정 개인에 대한 충성이 애국심처럼 포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역사에는 늘 모순이 있었다. 자유를 말하면서 노예제를 유지했고,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흑인과 원주민, 이민자, 여성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그래서 미국의 애국심은 언제나 “누구를 포함하고 누구를 배제하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평가돼야 했다.
트럼프의 애국심은 이 배제의 언어를 더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국경, 이민, 충성, 질서, 적대 세력이라는 단어가 중심으로 들어오고, 국가의 역사적 기념일은 포용의 계기보다 정치적 결집의 도구가 된다. 문제는 국가가 특정 지지층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장치가 될 때, 반대편 시민도 같은 나라의 구성원이라는 감각이 약해진다는 점이다.
250주년은 미국이 자신의 공화국적 약속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어야 한다. 미국은 한 대통령의 개인 브랜드보다 오래된 나라이고, 특정 정당의 선거 자산보다 더 큰 공동체다. 독립선언의 의미는 누군가의 얼굴을 여권에 넣는 데 있지 않다. 권력이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원칙을 지키는 데 있다.
그래서 미국 250주년의 진짜 질문은 트럼프가 애국심을 정치화하느냐가 아니다. 애국심은 언제나 정치적이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미국의 애국심이 공동선을 위해 쓰일 것인가, 아니면 한 정치인이 소유하고 거래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자산으로 바뀔 것인가.
Socko/Gho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