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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7일 일요일

당선의 기쁨보다 선거의 정당성…오세훈은 시민과 함께 설 것인가


올림픽공원 재선거 요구 시위와 오세훈 서울시장의 정치적 선택을 상징하는 투표함, 시민 군중, 서울시청 실루엣 이미지.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시민들은 오세훈 서울시장이
 승자의  위치에서 선거 정당성 문제를 말해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다./ghostimages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금 가장 애매한 승자다. 그는 선거에서 이겼다. 그러나 그가 이긴 서울의 한복판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터졌고, 잠실 투표소 대치와 올림픽공원 재선거 시위가 이어졌다. 선거의 숫자는 그를 승자로 만들었지만, 선거의 절차는 그에게 또 다른 시험지를 던졌다. 당선의 기쁨을 누리기에는 선거관리의 구멍이 너무 컸고, 침묵하기에는 올림픽공원 시민의 함성이 너무 커졌다.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분명하다.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지가 부족했고, 유권자들은 기다렸다. 일부 현장에서는 투표가 지연됐고, 잠실에서는 투표함 반출을 둘러싼 대치가 벌어졌다. 이후 올림픽공원 개표소 앞에는 재선거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모였다. 이 흐름은 단순한 정치 구호가 아니라 선거관리 실패가 시민 불신으로 번진 과정이다. 선관위가 설명해야 할 것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이고, 정치권이 답해야 할 것은 “이런 선거를 국민이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가”다.

오세훈은 이미 선관위를 향해 강하게 경고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두고 헌정질서와 참정권의 문제로 접근했고, 선관위의 책임과 개혁을 촉구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묻는 질문은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당신이 이겼으니 끝인가.” 이것이 올림픽공원에서 오세훈에게 던져진 진짜 질문이다. 이긴 사람이 입을 닫으면, 선거관리 실패는 패자의 불복으로만 축소된다. 반대로 이긴 사람이 선거의 하자를 말하면, 그 순간 문제 제기는 진영의 분노가 아니라 절차의 원칙이 된다.

그래서 “오세훈, 재선거 요구하라”는 압박은 정치적으로 날카롭다. 이것은 단순히 오세훈에게 자기 당선을 부정하라는 요구가 아니다. 시민들이 요구하는 것은 승자가 선관위의 실패를 더 높은 수준에서 다뤄 달라는 것이다. 선거의 승패를 떠나,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기본적 관리 실패가 있었고, 그로 인해 시민의 참정권이 흔들렸다면 승자도 말해야 한다는 요구다. 이 요구 앞에서 오세훈은 행정가로 남을 것인지, 선거 정당성 논쟁의 상징으로 설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오세훈이 갈 수 있는 첫 번째 길은 안전한 길이다. 선관위의 책임을 묻고, 제도 개혁을 촉구하되, 재선거 요구에는 선을 긋는 길이다. 이 길은 안정적이다. 서울시장으로서 행정의 연속성을 지킬 수 있고, 자기 당선의 정당성을 흔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길에는 정치적 위험도 있다. 시민의 눈에는 “이겼으니 조용해진 사람”, “선거 전에는 분노했지만 승리 뒤에는 꼬리를 내린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특히 올림픽공원에서 밤을 지새운 시민들에게는 그 침묵이 더 크게 들릴 수 있다.

두 번째 길은 위험하지만 강한 길이다. 오세훈이 자기 당선의 유불리를 내려놓고 전면 검증을 요구하는 것이다. 재선거를 곧장 요구하든, 최소한 법적 요건을 포함한 전면 조사와 재선거 가능성 검토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든, 그는 승자의 자리에서 원칙을 말할 수 있다. 이 장면은 정치적으로 매우 강하다. 패자가 재선거를 말하면 불복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승자가 “내 당선보다 선거 신뢰가 먼저”라고 말하면, 그 말은 민주주의의 원칙으로 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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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와 대학가의 성명도 이 국면을 가볍게 볼 수 없게 만든다. 일부 대학 총학생회와 시민사회 흐름은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참정권 침해로 보고 원인 규명과 재발 방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것은 특정 정당의 당락 문제를 넘어선다. 대학생들이 묻는 것은 “내 표가 제때 행사될 수 있었는가”이고, 시민들이 묻는 것은 “국가기관이 선거를 제대로 관리했는가”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면 선관위의 독립성은 방패가 아니라 변명이 된다.

올림픽공원 집회가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곳은 단순한 집회 장소가 아니다. 잠실 투표소 대치에서 시작된 선거 불신이 눈에 보이는 시민의 압력으로 모인 공간이다. 경찰 비공식 추산으로도 적지 않은 인파가 모였고, 재선거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밤을 넘겨 이어졌다. 현장에는 과격한 주장도 있었고, 확인되지 않은 의혹도 섞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이유로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본질을 지우면 안 된다. 선거관리 실패는 음모론이 아니다. 유권자가 투표지를 받지 못했거나 장시간 기다린 현실은 선관위가 설명해야 할 민주주의의 구멍이다.

오세훈이 지금 영웅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이 애매함 때문이다. 그는 패자가 아니다. 그는 이겼다. 그래서 더 큰 말을 할 수 있다. 승자가 선거의 문제를 지적하면, 그것은 자기 이익을 위한 불복이 아니라 제도 전체를 위한 문제 제기가 된다. 오세훈이 “나의 당선은 당선이고, 선관위의 실패는 실패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는 단순한 서울시장 1인이 아니라 선거 정당성 회복의 상징으로 올라설 수 있다.

반대로 그가 꼬리를 내릴 가능성도 있다. 선관위 개혁이라는 원론만 말하고, 재선거 요구와 전면 검증 요구 앞에서는 침묵할 수 있다. 그 선택은 현실 정치에서는 이해될 수 있다. 새 임기를 시작해야 하고, 시정 운영을 안정시켜야 하며, 불필요한 법적 논란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상징의 세계에서는 다르게 읽힌다. “이겼으니 끝났다”는 인상을 주는 순간, 그는 시민의 분노에서 멀어진다. 올림픽공원의 함성은 그를 향해 박수를 보낸 것이 아니라 답을 요구한 것이다.

민주당은 이 흐름을 정치쇼라고 비판할 수 있다. 실제로 재선거 요구는 법적으로 매우 무거운 주장이다. 조직적 부정선거가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선거 전체를 무효화하자는 요구는 신중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도 이 사안을 음모론이라는 말로만 덮을 수는 없다. 시민들이 거리로 나온 출발점은 투표용지 부족이라는 실제 사건이다. 확인된 관리 실패를 축소하면, 확인되지 않은 의혹은 오히려 더 커진다.

오세훈이 해야 할 말은 무조건 “재선거” 한 단어일 필요는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전면 검증을 요구하는 것이다. 어느 투표소에서 언제 투표지가 부족했는지, 몇 명이 기다렸는지, 몇 명이 투표하지 못했는지, 추가 투표지는 언제 도착했는지, 선관위의 수요 예측은 왜 빗나갔는지, 현장 책임과 중앙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전부 공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 검증 결과 법적 요건이 충족된다면 재선거 논의도 피하지 않겠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승자가 취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원칙의 언어다.

재선거 요구는 단순하지 않다. 선거 전체를 다시 치르려면 엄격한 법적 기준과 증거가 필요하다. 그래서 재선거를 쉽게 외쳐서도 안 되고, 쉽게 조롱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재선거 요구가 왜 나왔는지 묻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시민들이 제도 밖에서 소리를 지르기 전에, 제도 안에서 설명이 충분했는가. 선관위는 자료를 충분히 공개했는가. 정치권은 시민의 분노를 진영의 언어로만 소비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않으면 재선거 요구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세훈에게 이번 국면은 기회이자 함정이다. 기회인 이유는, 그가 승자의 자리에서 선거 정당성 문제를 말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함정인 이유는, 그가 너무 멀리 가면 자기 당선의 정당성까지 흔드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리더십은 바로 그런 순간에 드러난다. 안전한 말만 하는 사람은 행정가로 남을 수 있다. 위험한 원칙을 말하는 사람은 시대의 장면이 된다.

올림픽공원 시민 함성이 던진 질문은 단순하다. “이긴 당신이 말하라.” 패자가 말하면 불복이라 하고, 시민이 말하면 음모론이라 하며, 언론이 말하면 진영 보도라 한다면, 승자가 말해야 한다. 오세훈이 “나도 이 선거관리 실패를 끝까지 검증하겠다”고 말하는 순간, 이 사태는 정파적 논란을 넘어 절차의 문제로 올라간다. 그가 침묵하면, 재선거 요구는 더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선관위도 이 대목을 알아야 한다. 노태악 위원장 사퇴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퇴는 책임의 출발점이지 진실의 종착점이 아니다. 선관위는 모든 자료를 공개하고, 외부 검증을 받아야 한다. 독립기관이라는 말은 감시받지 않을 권리가 아니라 더 높은 투명성을 요구받는 위치다. 선거관리기관이 신뢰를 잃으면 다음 선거의 승자도, 패자도 모두 불안해진다.

결국 오세훈의 진짜 시험은 당선이 아니라 당선 이후다. 그는 이긴 사람이다. 그래서 선거의 하자를 말할 수 있다. 그는 현직 서울시장이다. 그래서 행정의 책임을 말할 수 있다. 그는 이번 사태의 최대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최대 시험대에 오른 인물이다. 그가 시민과 함께 설 것인지, 아니면 승자의 안전지대로 물러설 것인지에 따라 이번 국면의 정치적 의미는 달라진다.

오세훈이 영웅이 될지, 꼬리를 내린 승자로 남을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답은 간단하다. 시민의 분노를 이용하지 말고, 시민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재선거를 외치는 목소리를 무조건 받아들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 목소리가 왜 나왔는지 전면 검증하라는 뜻이다. 선거관리 실패가 사실이라면 책임을 물어야 하고, 재선거 요건이 충족되는지 공개적으로 따져야 하며, 다시는 투표지가 모자라는 선거가 없도록 제도를 고쳐야 한다.

올림픽공원의 함성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함성은 선관위만 향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과 민주당을 향하고, 국회를 향하며, 동시에 오세훈을 향한다. 승자는 침묵할 권리가 없다. 이긴 사람이 원칙을 말할 때, 선거 신뢰는 다시 시작될 수 있다. 오세훈의 선택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참고문헌

  • SBS, “오세훈 캠프 ‘선관위에 경고’…즉각 입장문,” 2026년 6월 3일.
  • 한겨레, “고성국 ‘오세훈, 재선거 요구하라’…국힘은 ‘재선거 촉구’ 말 아껴,” 2026년 6월 5일.
  • 한겨레, “민주, 장동혁·오세훈 ‘투표지 공세’에 ‘국민 자극…구태정치’,” 2026년 6월 7일.
  • 조선일보, “‘선관위가 국민 기본권 박탈’…분노한 2030, 잠실 개표소로,” 2026년 6월 6일.
  • 뉴시스, “6·3선거 뒤 첫 주말…도심 곳곳 ‘용지 부족’ 선관위 규탄 집회,” 2026년 6월 6일.
  • 파이낸셜뉴스, “‘지방선거 무효·재선거’ 도심 곳곳 시위…올림픽공원 2만명 집결,” 2026년 6월 6일.
  • 한국경제, “‘재선거하라’ 올림픽공원 밤샘 시위…인파 다시 몰려,” 2026년 6월 6일.
  • MBC, “투표소 이어 개표소도 막아‥‘재선거’ 집회,” 2026년 6월 6일.
  • 연합뉴스TV, “‘재선거’ 개표소 대치 이틀째…장기화 우려,” 2026년 6월 6일.
  • 뉴스 보도 종합, 경희대·한국외대·서강대·서울시립대 등 대학가 투표용지 부족 사태 규탄 성명 관련 보도, 2026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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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5일 금요일

노태악 사퇴가 남긴 선관위의 치명상... 투표지가 모자란 선거, 위원장이 물러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 사퇴를 상징하는 투표함, 투표지, 사과 연단이 배치된 정치 뉴스 썸네일 이미지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이 사퇴
하면서 선관위의 선거관리 신뢰가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ghostimages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결국 물러났다. 6·3 지방선거에서 벌어진 투표용지 부족 사태 때문이다. 선거일에 유권자가 투표소에 갔는데 투표지가 부족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민주주의 행정의 기본선은 무너진다. 선거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한 장의 투표용지가 제때, 정확히, 공정하게 유권자 앞에 놓이는 절차다. 그 한 장이 모자란 순간, 선거관리는 해명보다 먼저 책임을 요구받는다.

이번 사태의 폭발력은 단순한 행정 실수라는 말로 덮기 어렵다. 외신도 이를 가볍게 보지 않았다. 로이터는 한국의 선거관리 수장이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public outrage, 즉 대중적 분노 속에 사퇴했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일부 투표소에서는 투표용지가 바닥났고, 일부 지역에서는 보급 지연으로 투표가 중단되거나 늦어졌다. 서울 송파에서는 투표함 이송을 막는 항의까지 벌어졌다. 한국 안의 정치적 논쟁을 넘어, 외신의 눈에도 이번 사태는 “선거 관리 실패”로 보인 것이다.

노 위원장은 사과했고,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이 사퇴는 마무리가 아니라 시작에 가깝다. 선관위는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정치권에서는 국정조사 요구가 나오고, 특검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청와대도 선관위가 충분히 소명하고 엄정한 후속 조치를 해야 한다며 신뢰 회복을 촉구했다. 사태는 이미 선관위 내부의 책임 문제를 넘어 국가기관 신뢰의 문제로 확대됐다.

여기서 가장 조심해야 할 지점이 있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곧바로 부정선거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의혹과 사실은 구분되어야 한다. 선거 결과를 뒤집을 만한 조직적 조작이 있었다고 단정하려면 엄격한 증거가 필요하다. 그러나 반대로, “부정선거 증거는 아직 없다”는 말만으로 이번 관리 실패를 작게 만들 수도 없다. 선거관리기관이 가장 피해야 할 일은 의혹을 먹여 살릴 틈을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바로 그 틈을 만들었다.

선관위가 치명상을 입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거관리기관은 특정 정파의 편이 아니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느 정파도 선관위를 자기 편으로 의심하지 않을 만큼 투명해야 한다. 그런데 투표용지 부족, 현장 혼선, 투표 중단, 개표 지연, 항의 시위가 한꺼번에 벌어지면 유권자는 제도보다 감정을 먼저 믿게 된다. “내 표가 제대로 다뤄졌나”라는 질문이 생기는 순간, 선거의 승패와 별개로 민주주의의 비용은 커진다.

노태악 사퇴는 그래서 늦은 책임이자 불충분한 책임이다. 위원장이 물러났다고 해서 왜 투표지가 부족했는지, 어떤 지역에서 얼마나 부족했는지, 사전투표율 예측과 본투표 수요 계산은 왜 어긋났는지, 현장 보급 체계는 왜 늦었는지, 유권자 권리 침해는 어떻게 보상할 것인지가 자동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 사퇴는 책임의 출발점일 뿐, 진상규명의 대체물이 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선관위의 오래된 신뢰 문제와도 연결된다. 2022년 대선 당시 코로나 확진자 사전투표 관리 부실, 이른바 ‘소쿠리 투표’ 논란 이후 선관위는 이미 한 차례 큰 상처를 입었다. 이후 내부 특혜 채용 논란과 감사·수사 대응 논란까지 겹치며 선관위는 독립기관이라는 방패 뒤에서 충분한 설명 책임을 다했느냐는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투표용지 부족 사태가 터졌다. 국민이 “또 선관위인가”라고 묻는다면, 그 질문은 과도한 정치 공세만으로 치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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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모든 불신을 무제한으로 방치해서도 안 된다. 선거 의혹은 민주주의에서 다뤄야 할 문제지만, 증거 없는 단정은 선거제도 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 문제는 선관위가 바로 그 증거 없는 단정이 자라나는 토양을 줄여야 할 기관이라는 점이다. 선관위가 투명하고 빠르게 자료를 공개하고, 오류를 인정하고, 책임자를 분명히 하고, 제도 개선안을 내놓으면 의혹은 사실 검증의 테이블로 들어온다. 반대로 침묵하고 늦게 움직이고 방어적으로만 대응하면 의혹은 정치적 분노의 시장으로 흘러간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수 공개다. 어느 투표소에서 언제 투표용지가 부족했는지, 몇 명이 대기했는지, 몇 명이 투표하지 못하고 돌아갔는지, 추가 보급은 언제 도착했는지, 현장 책임자는 어떤 판단을 했는지, 중앙과 지역 선관위 사이의 보고 체계는 어떻게 작동했는지 공개해야 한다. 숫자 없는 사과는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 선거관리 실패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기록의 문제다. 기록이 공개되어야 의혹도 줄어든다.

정치권 역시 이 사안을 정략의 장작으로만 써서는 안 된다. 여야가 국정조사를 추진한다면 목표는 명확해야 한다. 선거 결과를 정파적으로 흔드는 것이 아니라, 선거관리 시스템의 실패 원인을 밝히는 것이다. 특검을 거론한다면 더더욱 신중해야 한다. 특검은 정치적 분노를 달래는 도구가 아니라 법적 필요성이 확인될 때 쓰는 장치다.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핵심은 하나다. 선관위가 왜 실패했는지, 다시는 같은 일이 없도록 어떤 제도적 안전장치를 둘 것인지다.

노태악 사퇴가 남긴 가장 큰 질문은 선관위원장의 겸직 구조다. 중앙선관위원장은 관례적으로 대법관이 맡아 왔다. 사법부 최고위 인사가 선거관리기관 수장을 겸하는 구조는 독립성과 권위를 보장한다는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반대로 실질적 상근 책임성과 행정 전문성은 충분했느냐는 질문도 피할 수 없다. 선거는 판결문이 아니라 현장 운영이다. 수천 개 투표소, 수만 명 인력, 수많은 변수, 실시간 위기 대응이 필요한 대형 행정이다. 권위만으로 관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선관위가 다시 신뢰를 얻으려면 세 가지를 해야 한다. 첫째, 이번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모든 데이터를 공개해야 한다. 둘째, 현장 대응 실패와 지휘 책임을 분리해 책임자를 명확히 해야 한다. 셋째, 독립기관이라는 이유로 외부 검증을 거부하지 말고, 오히려 외부 검증을 통해 독립성을 재건해야 한다. 독립성은 감시받지 않는 특권이 아니다. 독립성은 더 높은 투명성으로만 유지된다.

이번 사퇴는 한 개인의 퇴장이 아니다. 선관위가 국민 앞에 다시 시험지를 받은 사건이다. 투표용지가 모자란 선거는 민주주의의 자존심에 남는 상처다. 그 상처를 부정선거라는 단정으로 끌고 가서도 안 되지만, 단순 실수라는 말로 눌러서도 안 된다. 필요한 것은 과장 없는 진상규명, 빠짐없는 책임 추궁, 그리고 유권자가 납득할 수 있는 제도 개혁이다.

선거는 이긴 쪽의 축제가 아니라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절차여야 한다. 승복은 패자에게 강요하는 미덕이 아니라, 관리기관이 만들어내야 할 신뢰의 결과다. 노태악 사퇴 이후 선관위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믿어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을 수밖에 없도록 모든 것을 공개하는 것이다. 투표지는 모자랐지만, 설명마저 모자라서는 안 된다.


참고문헌

  • Reuters, “South Korea election chief quits over ballot paper shortages,” June 5, 2026.
  • Yonhap News Agency, “Election watchdog chief offers to resign over ballot shortage,” June 5, 2026.
  • YTN, “노태악 선관위원장 전격 사퇴…국민 신뢰 훼손 책임감,” 2026년 6월 5일.
  • YTN, “선거 관리 부실부터 특혜 채용까지…4번 고개 숙인 노태악 선관위원장,” 2026년 6월 5일.
  • 연합뉴스, “청, ‘투표지 사태’ 노태악 사의 표명에 무겁게 받아들인다,” 2026년 6월 5일.
  • MBN, “노태악 사퇴…투표용지 부족 책임 통감 여야 국정조사 추진,” 2026년 6월 5일.
  • MBC Newsdesk, “노태악 책임 통감 물러나겠다, 김민석 총리 필요하면 특검,” 2026년 6월 5일.
  • Korea JoongAng Daily, “National Election Commission chief resigns after ballot shortage debacle in Seoul,” June 5, 2026.
  • Maeil Business Newspaper English, report on Roh Tae-ak’s apology and resignation after ballot shortage, June 5, 2026.
  • Reuters, “South Korea election official rejects impeached president’s fraud claims,” February 11, 2025.
  • Yonhap News Agency, “Supreme Court Justice Roh Tae-ak nominated as election watchdog chief,” April 2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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