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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영 증조부의 친일 행적 논란을 계기로 다시 제기된 역사 청산과 동일한 잣대의 문제. 8·15는 과거를 기억하는 날을 넘어 대한민국의 주권과 자유를 되묻는 광복절이다./image: havv_y instagram |
광복절을 불과 이틀 앞두고 배우 하영의 증조부 안상호를 둘러싼 친일 행적 논란이 터졌다. 하영은 방송에서 증조부를 유명한 의사로 소개하며 가족의 자랑처럼 이야기해 왔지만, 일제강점기 대정친목회 활동 등의 기록이 다시 조명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소속사는 처음에는 의혹이 사실무근이라는 취지로 대응했다가 관련 자료를 확인한 뒤 입장을 바꾸었고, 하영 역시 자신이 가족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로 증조부의 삶을 단편적으로 알고 있었다며 사과했다. 이 사건은 한 배우의 가족사 논란으로만 소비하기에는 묘한 역사적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친일의 역사를 어디까지 기억해야 하며, 그 역사적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는가. 더 근본적으로는 8월 15일을 맞아 우리가 ‘광복’이라는 말을 무엇으로 기억하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친일의 역사’와 ‘친일의 후손’을 같은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하거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행위에 역사적 책임을 묻는 것은 필요하다. 실제로 영화감독 허영(許泳)의 경우처럼 조선총독부와 일본 군부의 지원을 받은 선전영화를 제작하고 전쟁 선전에 참여한 사례는 명백한 역사적 행위로 기록되어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은 그의 1941년작 《너와 나》를 내선일체를 강조한 대표적 선전영화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배우 하영은 그 허영 감독과 다른 인물이며, 이번 논란 역시 증조부의 행적과 후손인 배우의 현재 행위를 구분해야 한다. 역사적 책임은 행위자에게 귀속되어야지 혈통을 따라 자동으로 상속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후손에게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조상의 죄를 대신 갚으라’가 아니라 그 역사를 정확히 알고 기억할 책임이다.
그렇다면 친일을 판단하는 역사적 잣대도 감정이 아니라 행위와 맥락이어야 한다.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일본어를 사용했다거나 일본에서 공부했다거나 일본식 이름을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두를 친일파로 규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식민권력의 압력 아래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협력 행위를 면책할 수도 없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했는가, 누구를 위해 했는가, 얼마나 적극적이었는가, 식민지배와 전쟁동원에 어떤 역할을 했는가다. 이 기준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 안상호의 경우에도 근대 의학 발전에 기여한 경력과 대정친목회 참여라는 친일적 행적을 각각 역사적 사실로 분리해 살펴봐야 한다. 인간의 한 생애를 하나의 색깔로 칠하는 것은 역사학이 아니라 정치적 낙인에 가까워진다. 친일 청산의 목적은 사람을 영원히 처벌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식민권력에 대한 협력이었는지를 후대가 정확히 판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더욱 중요한 문제는 한국 사회의 ‘반일’이 언제부터 역사적 기억을 넘어 정치적 잣대로 변질되는가 하는 것이다.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비판과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한 역사적 기억은 대한민국의 독립정신과 분리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날 살아 있는 일본인 전체, 현재의 일본 사회 전체, 또는 일본과의 모든 교류를 하나의 ‘친일’ 범주로 묶는 순간 역사적 반일은 다른 성격을 갖게 된다.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것과 일본이라는 국가·국민을 무조건 적대하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니다. 더구나 한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고 일본 역시 전후 민주국가로 변화한 현실에서 과거의 가해국과 현재의 일본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우리가 지켜야 할 역사적 기준을 약화시킬 수 있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분노의 지속기간이 아니라 사실의 정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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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8·15는 ‘반일의 날’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진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8·15광복을 1945년 8월 15일 일제 식민통치에서 벗어나 독립을 되찾은 사건으로 설명하면서, 광복의식이 단순한 일본 배척을 넘어 민족독립의식·국권회복의식·자주의식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한다. 특히 3·1운동 이후 광복은 왕조의 부활이 아니라 현대적 국민국가 건설과 연결됐으며, 독립운동은 시민적 민족주의와 민주공화국 건설이라는 방향으로 확장됐다. 이것이 8·15의 핵심이다. 우리가 일본을 미워해서 광복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나라를 선택하고 스스로 통치할 권리를 되찾았기 때문에 광복한 것이다. 그러므로 광복절을 일본에 대한 적대감만으로 축소하는 것은 오히려 독립운동의 역사적 목표를 축소하는 일이다.
8·15의 더 아픈 역사는 광복과 동시에 완전한 자주국가가 완성되지 못했다는 데 있다. 해방 직후 한반도는 38선을 경계로 분단됐고, 이후 냉전 속에서 남북에 서로 다른 체제가 자리 잡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광복 관련 역사 서술 역시 8·15가 일제 지배로부터의 해방인 동시에 분단이라는 새로운 민족적 과제를 남겼음을 지적한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자주’를 말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일본을 비판하는 것만을 의미해서는 안 된다. 어떤 외세에도 우리의 판단을 맡기지 않는 것, 미국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북한이든 대한민국 국민이 스스로 국가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진정한 자주의 출발점이다. 친일을 비판하면서 중국의 권위주의를 눈감아도 안 되고, 반대로 일본과의 과거사를 이유로 현재의 자유민주주의 국가 일본과의 모든 협력까지 거부해서도 안 된다. 광복의 정신은 어느 한 나라에 대한 영구적 증오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과 자유를 지키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제 2026년 8·15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누가 친일파인가’를 끝없이 찾아내는 일이 아니라, 왜 우리가 광복했는지를 다시 묻는 일이다. 배우 하영의 사과는 후손에게 조상의 행위를 그대로 뒤집어씌우는 연좌제의 근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동시에 조상의 역사적 행적을 모르고 가족의 자랑으로만 기억했던 오류를 돌아보고 역사자료를 직접 확인하겠다는 태도는 오히려 8·15의 의미에 가까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친일의 그림자를 지우지 말되 그 그림자를 후손에게 상속시키지도 말자. 과거의 협력자는 역사적 증거로 평가하고, 후손은 자신의 현재 행동으로 평가해야 한다. 그리고 8·15의 잣대는 일본에 대한 증오가 아니라 주권·자유·민주공화국·자기결정이어야 한다. 1945년 우리가 되찾은 것은 단순히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우리의 나라를 우리가 결정할 권리’였다. 그렇다면 81년이 지난 오늘의 광복절에 대한민국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도 하나다. “우리는 지금도 정말 우리 스스로 결정하고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친일의 그림자보다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할 8·15의 진정한 의미다.
이번 하영 논란에서 오히려 눈여겨봐야 할 것은 ‘파묘’ 그 자체보다 민심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이다. 하영이 방송에서 ‘4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가족사를 소개한 뒤 온라인에서 증조부 안상호의 행적이 재조명됐고, 8월 12일 공개된 ‘최욱의 매불쇼’에서는 역사강사 배기성이 안상호가 참여했던 대정실업친목회의 성격을 거론하면서 논쟁이 더욱 뜨거워졌다. 하영 측 역시 처음에는 ‘사실무근’이라고 했다가 1916년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안상호의 이름이 실제로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사과했다. 이 과정은 오늘날 매체가 단순히 뉴스를 전달하는 통로가 아니라 민심의 이상징후를 포착하는 ‘파수대’가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조상의 친일 행적을 확인하고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는 것과 후손에게 조상의 죄를 연좌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잣대를 현재에도 살아 있는 정치적 행위에까지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과거의 친일에는 그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오늘날 중국공산당이나 북한 정권의 권위주의·인권탄압·대남전략에 우호적인 태도에는 훨씬 느슨한 잣대를 적용한다면, 그것 역시 역사정의가 아니라 선택적 정치 프레임에 불과하다. 친일을 심판하는 기준이 ‘대한민국의 주권과 자유를 훼손했는가’라면, 친중·친북 문제 역시 같은 기준으로 물어야 한다. 반대로 중국인·중국문화에 우호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친중이라거나 북한 주민·한반도 평화를 말한다고 친북이라고 낙인찍어서도 안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혈통도, 국적도, 이념적 구호도 아니다. 어느 외부 권력의 이익을 위해 실제로 무엇을 했으며, 대한민국의 자유·주권·민주주의에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다. 그것이야말로 친일 청산을 진정한 역사적 원칙으로 만드는 동시에, 오늘의 친중·친북 논란에도 적용할 수 있는 동일한 잣대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반드시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친일도 잘못이고 친중·친북도 잘못이다’라는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아무런 행위와 증거의 구분 없이 양쪽에 던지는 순간 역사적 사실을 흐리는 ‘기계적 양비론’이 될 수 있다. 친일 논란이 제기됐을 때마다 “그러면 친중은?”이라고 반문하는 것만으로 과거의 친일 행위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반대로 친일 청산을 주장하면서 오늘날 중국공산당이나 북한 정권에 대한 실제 협력·추종·선전 행위에는 침묵한다면 그것 역시 선택적 잣대다. 정의로운 기준은 좌우 어느 편에 서느냐가 아니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 데 있다. 과거의 친일은 당시 식민권력에 무엇을 했는지로 판단하고, 오늘의 친중·친북 역시 중국공산당이나 북한 정권과 실제 어떤 관계를 맺고 무엇을 했는지로 판단해야 한다. ‘모두까기’가 공정함은 아니다. 같은 잣대를 들이대되, 다른 사실은 다르게 판단하는 것이 진짜 공정이다.
참고자료
-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8·15광복」: 광복의 의미를 국권회복·민족독립·자주의식으로 설명하고 3·1운동 이후 현대적 국민국가 건설과 연결.
- 한국영상자료원 — 《너와 나》(1941): 허영 감독의 작품과 조선군사령부·조선총독부·일본 육군성 보도부의 지원, 내선일체 선전 성격을 확인할 수 있는 1차에 가까운 자료.
- 연합뉴스 —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 문화계 인사: 허영 감독의 친일영화 제작 및 일본군 선전반 활동 관련 자료.
- 한국학술지인용색인(KCI) — 「근대전환기 서구 근대 생리학의 수용과 변용」: 안상호의 근대 의학·과학사적 활동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학술자료.
- 연합뉴스 — 배우 하영 사과 관련 최신 보도(2026.8.12): 하영 본인의 사과와 증조부 관련 역사자료 확인 과정.
- 연합뉴스 — 하영 측 입장 번복 및 대정친목회 평의원 기록(2026.8.11): 이번 논란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핵심 최신자료.
Socko/Gho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