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8일 토요일

[시사 논단] 187명의 개헌 발의... 개헌 논의는 시작부터 ‘합의 없는 명분’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국회의 187명 개헌 발의와 정치권 합의 부족 논란
여야 6당 의원 187명이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충분한
합의와 설득 없는 개헌 추진이라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fn

지난 4월 3일 우원식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개혁신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여야 6당 소속 국회의원 187명이 대한민국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결코 가벼운 움직임이 아니다. 국회의장이 전면에 서고, 여러 정당 의원들이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만으로도 정치권이 다시 개헌을 공론장으로 끌어올렸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늘 숫자 바깥에서 시작된다. 헌법은 국회의원들끼리 결의문처럼 던지고 끝낼 수 있는 문서가 아니다. 국회 3분의 2 찬성과 국민투표라는 이중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국가의 최상위 질서다. 시작은 거창했지만, 정작 국민이 느끼는 공기는 차갑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번 개헌 논의가 ‘국민적 숙의의 축적’이라기보다 ‘정치권의 일방 발의’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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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은 원래 정치권이 가장 쉽게 말하고 가장 어렵게 완성하는 과제다.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지금의 헌법은 시대 변화에 비해 낡은 조항이 적지 않고, 권력구조 역시 현실 정치의 충돌을 충분히 감당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대통령제의 긴장, 국회의 권한 구조, 기본권 조항의 현대화, 지방분권, 국민 삶과 동떨어진 오래된 문구들까지 손볼 이유는 충분하다. 문제는 그 필요성이 크다고 해서, 아무 방식으로나 밀어붙여도 된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처럼 거대 의석을 앞세워 먼저 발의부터 하고 뒤늦게 동의를 구하는 방식은 개헌을 국가적 합의의 산물이라기보다 정치적 주도권 경쟁의 수단처럼 보이게 만든다.

국민의힘 안팎에서 “이런 식의 개헌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김종혁 전 최고위원의 말처럼, 개헌은 애초에 선언적 조항 몇 개를 손보는 수준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정말 헌법을 고친다면 권력구조 전반을 포함해 오래된 조항들을 현실에 맞게 정비하는 큰 그림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번 발의는 그에 비해 범위가 좁고, 접근은 성급하다는 인상을 남긴다. 더구나 헌법 개정은 국회만의 행위가 아니다. 마지막 문을 여는 것은 국민투표다. 국민이 “왜 지금 이 개헌이 필요한가”, “누구를 위한 개헌인가”,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납득하지 못하면, 숫자 187은 오히려 공허한 힘자랑처럼 보일 수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번 개헌 논의가 자칫 정치권 내부의 유불리 계산으로 소비될 가능성이다. 개헌이란 원래 권력을 나누고 제한하기 위한 작업이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치에서 개헌은 너무 자주 정반대로 사용돼 왔다. 누군가는 정국 돌파용 카드로, 누군가는 권력 재편용 명분으로, 누군가는 상대를 압박하는 상징 조치로 활용해 왔다. 그런 기억이 축적된 사회에서 국민은 이제 개헌이라는 단어 자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용보다 의도를 먼저 묻고, 명분보다 타이밍을 먼저 의심한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말 국가 미래를 위한 개헌이라면, 왜 더 넓은 사회적 설득과 야당과의 치열한 조율 없이 먼저 숫자로 밀어붙였느냐는 질문이 따라붙는다.

결국 이번 개헌 발의가 던진 가장 큰 메시지는 “정치권이 헌법을 고치자고 나섰다”가 아니라, “정치권이 아직도 국민을 설득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는 데 있다. 개헌은 표 계산으로 시작할 수는 있어도, 표 계산만으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국민적 합의가 없는 개헌은 성공하더라도 상처를 남기고, 실패하면 정치 불신만 더 깊게 만든다. 헌법은 다수의 뜻만으로 고치는 문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함께 납득해야 할 약속이다. 이번 187명의 발의가 진정한 출발점이 되려면, 이제라도 숫자보다 설명이 앞서야 하고, 선언보다 설득이 깊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개헌은 시대를 바꾸는 문서가 아니라, 또 하나의 정치 이벤트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참고문헌(References)

  • 경향신문, 여야 6당·무소속 187명, 개헌안 공동 발의···제1야당 국힘서는 한 명도 안 서명, 2026-04-03. 우원식 국회의장과 6당·무소속 의원 187명이 개헌안을 공동 발의했고, 국민의힘은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한겨레, 국힘 뺀 원내 6개 정당 개헌안 발의…187명 서명, 2026-04-03. 국민의힘 제외 6개 정당이 개헌안을 공동 발의했고, 주요 내용으로 계엄 통제 강화·균형발전 의무·헌법 전문 개정이 포함됐다는 점을 뒷받침합니다.
  • 연합뉴스TV, 여야 6당, 개헌안 발의 착수…국힘은 불참, 2026-03-31. 6·3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추진하는 구상, 그리고 개헌안의 핵심 조항이 무엇인지 정리돼 있습니다.
  • 경향신문, 명분 없는 반대, 허술한 빌드업…39년만의 개헌, 이렇게 한다고?, 2026-04-18. 김종혁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의 “개헌 범위도 선언적인 일부 조항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과, 민주당이 국민의힘 설득에 충분히 나서지 않았다는 지적이 담겨 있습니다.
  • 조선일보 사설, 개헌마저 제1야당 제외하고 할 수는 없어, 2026-04-02. 개헌처럼 큰 사안은 제1야당을 배제한 채 추진하기 어렵다는 비판적 시각을 보여 줍니다.
  • 경향신문 칼럼, 이대로는 영원히 바꿀 수 없다, 2026-03-23. 우원식 의장이 제안한 ‘우선 개헌’의 취지와, 계엄 통제·균형발전·헌법 전문 개정이 최소 공약수라는 논리를 보완합니다.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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