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소리-Voice Of World)
[논평]
불구대천의 형제들: 문골오소리와 손가혁, 그리고 좌파의 내전
정치는 늘 외부의 적과 싸우는 전쟁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내부 전쟁이 더 피비린내 난다. 한국 진보 진영의 최근 풍경을 보면, 적은 더 이상 ‘보수’가 아니다.
이제 그들은 서로의 댓글창을 향해 창과 방패를 들고 싸운다. 그 이름도 요란한 문골오소리와 손가혁,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좌파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싸움은 오늘날 진보정치의 민낯을 드러내는 가장 풍자적인 장면이다.
“문골오소리” — 신념인가, 신앙인가
문골오소리의 기원은 단순하다. 한때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는 정치적 열망 속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지지하던 온라인 지지층이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들의 충성심은 정치적 지지의 수준을 넘어 거의 신앙에 가까운 결속으로 진화했다. 그들은 문재인의 정책 실패조차 “배신이 아닌 시험”으로 해석하고, 비판자에게는 “배은망덕한 자” 혹은 “적폐 잔당”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SNS에서 문재인을 향한 미세한 비판조차 용납되지 않았다. 심지어 “문재인 잘했다”는 말보다 “문재인밖에 없다”는 주문이 더 자주 외워졌다. 그들의 논리 속에서 문재인은 ‘정치인’이 아니라 ‘도덕적 완결체’였다.
즉, 문골오소리의 세계관은 정치가 아닌 신앙 체계였다. 이 신앙은 정치적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문재인의 정책을 냉철하게 평가하거나 개혁 방향을 논의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눈에 “이단”이 되었다.
“손가혁” — 정의를 외치다 칼을 든 사람들
반면 손가혁(손석희 가짜뉴스 혁파단) 혹은 넓은 의미의 급진적 진보 그룹은 정의와 개혁, 반언론 카르텔을 내세우며 등장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들의 전투 대상은 점차 보수가 아닌, 자신들과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른 좌파로 바뀌었다.
손가혁은 늘 "진보 내부의 배신자"를 색출하며 정화를 외쳤다. 이념적 순수성을 강조하는 그들의 행보는 마치 ‘혁명적 정화운동’과 ‘마녀사냥’의 경계선 위를 걸었다. 그들의 SNS는 종종 “정의의 집회”가 아니라 “진보 내부 숙청”의 장이 되었다.
손가혁의 가장 큰 특징은 도덕적 우월감의 무기화다. 그들은 “나는 진보다”라는 깃발로 상대를 찍어누르며 조금이라도 타협적인 언행을 보이면 즉시 “기득권화된 좌파”로 낙인찍었다. 결국 그들의 싸움은 보수와의 싸움이 아니라 진보 내부의 ‘순도 테스트’가 되어 버렸다.
불구대천의 숙명 — 좌파는 왜 좌파와 싸우는가
문골오소리와 손가혁의 싸움은 단순한 온라인 논쟁이 아니다. 이는 이념의 정체성 위기이자, 좌파의 내적 분열의 상징이다. 좌파의 세계는 본래 ‘연대’와 ‘공동체’를 핵심 가치로 삼는다. 하지만 연대는 ‘동질성’이 아니라 ‘다양성의 인정’ 위에서만 유지된다.
그런데 지금의 진보는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 각자는 자기 신념을 ‘진리’로 믿고, 상대의 차이를 ‘배신’으로 여긴다. 결국 이들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이념적 교조주의”의 함정에 빠진다.
문골오소리는 “문재인 비판 금지령”을 내리고, 손가혁은 “좌파 순혈주의”를 강요한다. 그리하여 둘 다 자기 정당화의 교주적 형태로 변한다.
결국 남는 건 ‘진보의 명분’이 아니라 ‘진보의 분열’이다. 그 싸움은 점점 추상적이 되어간다. 서로를 향해 “배신자” “기득 ” “위선자”라는 단어를 던지지만, 정작 국민의 삶은 그 싸움의 어디에도 없다.
“진보”라는 이름의 유령
오늘의 진보 진영은 마치 옛 혁명가들의 망령이 인터넷 속에 되살아난 모습이다. 그들은 여전히 “적폐청산”과 “정의”를 외치지만, 그 말들은 이제 비어 있다. 왜냐하면, 그들이 싸우는 대상은 이미 타락한 권력이 아니라 서로의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문골오소리는 문재인 신화를 수호하며 현실을 부정하고, 손가혁은 자기 의로움에 도취되어 정치적 현실감각을 잃었다. 그 결과, 진보의 언어는 도덕적 선언으로만 남고 정치는 현실에서 사라졌다.
이쯤 되면, 좌파의 내전은 이념의 차이가 아니라 감정의 전쟁이다. “우리가 더 깨끗하다”, “우리가 더 진짜다”, 이 유치한 경쟁 속에서 진보는 점점 정치적 유아화의 길로 접어든다.
희극의 끝, 그러나 비극의 시작
문골오소리와 손가혁의 싸움은 한편으로는 슬픈 희극, 다른 한편으로는 진보의 자화상이다. 그들의 논쟁은 SNS를 뜨겁게 달구지만, 결국 아무도 설득하지 못한다. 모두가 ‘정의’를 외치지만, 정작 정의는 그들의 마음속에서 사라진다.
이 싸움의 본질은 ‘정치적 방향성’이 아니라 ‘정체성의 불안’이다. 진보가 집권 경험을 통해 현실과 부딪히자, 일부는 그 현실을 ‘배신’이라 느끼고, 다른 일부는 ‘필연’이라 말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좌파는 스스로를 갈가리 찢는다.
결국 이 싸움의 승자는 없다. 문골오소리도, 손가혁도, 좌파도 모두 상처만 남긴다. 그 상처 위에 보수는 미소 짓는다. 왜냐하면, 적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서 서로를 무너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 — 불구대천의 형제들이여, 거울을 보라
오늘의 진보는 “누가 더 순수한가”를 두고 싸우는 형제의 전쟁터다. 그러나 순수함은 언제나 위험하다. 정치는 흙탕물 속에서 이뤄지는 현실의 기술이지, 하얀 도복 입은 도덕시험장이 아니다.
문골오소리와 손가혁이 진정 진보를 원한다면, 서로의 상처를 핥기보다 거울을 봐야 한다. 그 거울 속엔 “적”이 아니라 “같은 피의 형제”가 있다. 진보의 적은 진보 내부의 이단이 아니라, 시민을 잃어버린 진보 자신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좌파의 불구대천 싸움은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희극으로 반복될 것이다.
Sock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