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일본의 최근 행보를 단순한 도발이나 실언으로 해석하는 순간, 분석은 표면에서 멈춘다. 일본의 전략적 사고는 더 깊고, 더 위험하다. 일본 내부에서 대동아전쟁과 2차 세계대전을 바라보는 해석은 외부와 다르다. 패착은 침략 그 자체가 아니라, ‘미국과 전쟁을 선택했다는 점’이라는 인식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이 인식 속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결정적 변수가 아니었다.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일본이 패망한 이유는 중·러 때문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초월적 상대를 적으로 돌렸기 때문이며, 그 결과로 오늘날까지 굴욕과 수치를 감내하고 있을 뿐이라는 자의식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현재의 ‘트리거 전략’이 등장한다. 일본은 더 이상 미국의 의중을 모르는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미국의 심기를 정면으로 건드리지 않는 선을 정밀하게 계산한다. 미국이 직접 나서기 어려운 회색지대, 관리와 거리두기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영역에서 일본은 일부러 소음을 키운다.
핵 보유 발언과 군사적 언사는 그 소음의 장치다. 일본이 노리는 것은 실제 핵무장이 아니라, 질서 재편의 불씨를 먼저 당기는 위치다. 국제정치에서 트리거는 결과가 아니라 기회를 만든다. 사건을 먼저 발생시키는 국가는 협상과 재편의 출발점을 장악한다.
이 계산 위에서 일본은 중·러를 상대적으로 ‘만만한 변수’로 본다. 미국을 자극하지 않는 한, 중국과 러시아는 직접적 충돌을 회피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중국은 여전히 허허실실의 전략으로 시간을 벌 것이고, 러시아는 다른 전선에 묶여 있다. 일본은 이 공백을 주도권 이동의 창(window)으로 인식한다.
더 나아가 일본은 자신을 전후 질서의 수혜자가 아니라, 전후 질서를 다시 설계할 수 있는 실행자로 재정의하려 한다. 제2의 동북아 주도권이라는 향수적 표현보다, 실제로는 “필요하다면 전쟁도 감내할 수 있다”는 냉혹한 계산이 작동한다. 해·공군력, 미사일 방어, 해상 통제 능력을 복원해 온 일본에게 이는 공허한 수사가 아니다.
중·러와의 미해결 영토 문제 역시 이 맥락에서 재해석된다. 그것은 외교적 분쟁이 아니라, 질서 재편 국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전략 자산이다. 일본이 트리거를 당기는 순간, 이 문제들은 언제든 전면으로 부상할 수 있다.
결국 일본의 현재 행보는 과거를 반복하려는 충동이 아니다. 과거의 패착을 수정하려는 시도다. 미국과는 싸우지 않되, 미국이 나서기 전에 판을 흔들고, 그 과정에서 중·러를 압박해 동북아 질서 재편의 불씨를 지피려는 것이다.
문제는 이 트리거가 언제나 전쟁과 가장 가까운 장치라는 점이다. 불을 지피는 자는, 불길이 어디로 번질지 끝내 통제하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