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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통령은 국가 원수”라는 말과 “국민은 신속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있다”는 논리가 국정감사장에서 묘한 정치적 아이러니를 만들어냈다./credit: edaily |
국회 법사위 국정감장이 또 하나의 진풍경을 연출했다. 이번에는 조희대 대법원장을 일반증인으로 세운 서영교 법사위원장과 김태규 국민의힘 의원의 충돌이다. 여당은 대법관 후보 재제청을 거부한 대법원장에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했고, 야당은 그렇다면 대통령도 국회에 세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맞받았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조 대법원장을 불러놓았다면 이재명 대통령도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여기서 서영교 위원장이 던진 한마디가 묘하다. “대통령은 국가 원수다.” 대통령을 국가의 최고 지위에 있는 존재로 설명한 것인데, 정치권의 말싸움에서는 이상하게도 이 ‘원수’가 다른 원수(怨讐)로 들리는 순간이 생겼다.
‘국가원수(元首)’의 원수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원수(怨讐)’는 한자가 다르다. 하나는 국가의 최고 대표자를 뜻하고, 다른 하나는 말 그대로 미워하고 공격해야 할 적을 뜻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치가 워낙 험악해져서 그런지, 이제는 한자까지 확인하지 않으면 무슨 원수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더구나 성경에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까지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국가원수라면, 국회는 그 국가원수를 사랑해야 하는가, 아니면 국정조사장에 세워야 하는가. 물론 말장난이다. 그러나 국정감사장에서 권력기관을 향해 서로 “나오라”고 외치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대한민국 정치가 어느 순간 헌법의 권력분립보다 ‘누가 누구를 불러낼 것인가’의 경쟁에 빠진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서영교 위원장이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재제청 거부를 비판하면서 꺼낸 논리다. 서 위원장은 헌법 제27조를 들어 국민에게는 신속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있는데 대법원장의 재제청 거부가 이를 침해했다며 헌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도 앞서 같은 논리로 조 대법원장을 압박해왔다. 여기까지는 하나의 헌법 논쟁이다.
그런데 정치적 아이러니는 바로 다음 질문에서 발생한다. 그렇다면 ‘국민은 신속히 재판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을 가장 뜨겁게 들어야 할 정치인은 누구인가. 바로 이 대목에서 야당의 조롱이 끼어든다. “그럼 이재명 대통령도 빨리 재판받으라는 이야기인가?” 물론 서영교 의원이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치에서는 논리의 칼날이 때때로 발언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방향을 바꾼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해 “국민의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공격했는데, 그 논리를 한 바퀴 돌리면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똑같은 질문이 돌아간다.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가 국민의 권리라면 대통령이라고 예외일 수 있는가. 정치적 풍자는 바로 이런 순간에 태어난다.
더구나 서영교 위원장은 조 대법원장을 향해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서로 맞먹으려 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고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라는 논리였다. 그런데 삼권분립의 헌법적 의미를 생각하면 이 역시 묘한 장면이다. 대통령이 국가원수라는 이유로 사법부의 수장을 내려다보는 순간,...
야당에서는 곧바로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반대로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요구에 응하지 않으면 여당에서는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결국 국회에서 벌어진 것은 헌법의 해석 싸움인가, 아니면 누가 더 높은가를 겨루는 권력 서열 싸움인가.
그런데 여기서 한 번 더 뒤집어보면 묘한 정치적 그림이 만들어진다. 서영교 의원의 발언은 겉으로 보면 이재명 대통령의 권한을 강하게 옹호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논리를 끝까지 밀어붙이면 오히려 대통령에게 불편한 질문이 돌아온다. “국민의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를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대통령 자신과 관련된 재판 역시 신속하게 진행돼야 하는 것 아닌가.”
이것은 서영교 의원의 속내를 단정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 언어가 의도와 다르게 돌아와 자기 진영을 찌르는 아이러니다. 그래서 요즘 정가에서 흘러나오는 또 하나의 설, “서영교도 결국 자기 정치가 필요했던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정통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이재명 정부의 김지용 중수청장 인선을 둘러싸고 기존 지지층을 속였다거나 배신했다는 식의 불만까지 터져 나온다.
그렇다면 여권 내부에서도 “나를 계속 챙겨주지 않으면 나 역시 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는 신호가 나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것 역시 확인된 사실이라기보다는 정치권에서 만들어지는 하나의 해석이다. 사람을 자리에 앉히면 충성하고, 자리를 주지 않으면 공격한다는 정치의 오래된 문법을 적용하면 그럴듯해 보일 뿐이다.
결국 이번 법사위의 진짜 희극은 누가 누구를 이겼느냐가 아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고, 대법원장은 대통령과 맞먹어서는 안 되며, 국민은 신속하게 재판받을 권리가 있고, 그래서 대법원장은 헌법을 위반했다는 논리가 한꺼번에 등장했다. 그런데 그 논리를 그대로 들고 한 바퀴 돌아보면 질문은 다시 대통령에게 돌아간다.
국가원수라고 해서 헌법 위에 설 수 있는가. 국민의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는 대통령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가. 그리고 국회는 사법부를 견제하는 것인가, 아니면 사법부를 길들이려는 것인가. 결국 서영교의 말이 이재명을 도운 것인지, 아니면 의도하지 않게 이재명에게 질문 하나를 던진 것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국가원수라는 말이 나왔는데, 정치권에서는 어느새 ‘원수’가 누구인지부터 찾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가 정말 웃기는 곳이 된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너무 오래 웃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 연합뉴스, 「與 "조희대, 국가원수 맞먹으면 안돼"·野 "대통령 대법관쇼핑"」, 2026.10.07. 10월 6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서영교 위원장이 “대통령은 국가 원수”라고 발언한 내용, 조희대 대법원장 일반증인 출석, 대법관 재제청 문제를 둘러싼 여야 공방을 확인하는 핵심 자료다.
- 연합뉴스, 「조희대, '제2의 윤석열 꿈꾸냐' 질문에 "모욕적이고 서글픈 일"」, 2026.10.06. 조희대 대법원장의 국정감사 출석 과정과 사법독립·삼권분립을 둘러싼 질의 및 여야의 거친 설전을 확인할 수 있다.
- 연합뉴스, 「"국민 재판받을 권리 침해는 위헌"…與, 좌담회 열고 曺압박」, 2026.10.02. 서영교 위원장이 헌법 제27조의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를 근거로 조희대 대법원장의 대법관 후보 재제청 거부를 비판한 발언의 근거 자료다.
- 연합뉴스, 「與, '재제청 거부' 曺에 "난독인가…'희대의 난' 진압될 것"」, 2026.09.22. 대법관 재제청 거부를 둘러싼 민주당의 초기 대응과 “국민의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라는 논리가 어떻게 정치적 쟁점으로 발전했는지 확인하는 자료다.
- 대한민국헌법 제27조, 국가법령정보센터. 모든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다루는 이번 논평의 헌법적 근거.
- 대한민국헌법 제1조·제101조, 국가법령정보센터. 민주공화국과 국민주권, 사법권과 법원의 독립이라는 이번 논평의 기본적인 헌법적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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