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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동훈 의원의 노무현 전 대통령 금품수수 의혹 제기에 곽상언 의원이 자료와 근거를 요구하며 맞섰다./credit: chosun-ytn |
영화 한 편에서 시작된 정치적 논쟁이 어느새 17년 전 사건까지 끌어올렸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싸고 역사 왜곡 논란이 벌어진 데 이어, 온라인에는 ‘미는자(들)’, ‘부엉이바위의 진실’ 같은 패러디까지 등장했다. 국민의힘 일부 인사들이 이를 소개하면서 논쟁의 무대는 영화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문제로 옮겨갔다.
그리고 5일,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동훈 무소속 의원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한 의원이 노 전 대통령 또는 가족의 박연차 금품수수 의혹을 ‘팩트’라고 표현한 데 대해 “그 팩트를 보여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영화의 ‘상상력’ 논쟁이 현실 정치에서는 ‘사실’의 증명 문제로 되돌아온 셈이다. 곽 의원의 반박은 의외로 단순하다.
당시 사건을 재판한 판결문이 있느냐는 것이다. 곽 의원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관련 사건이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돼 재판과 판결이 진행되지 않았는데, 무엇을 근거로 한 의원이 이를 ‘확정적 사실’ 또는 ‘팩트’라고 단정하는지 묻고 있다. 특히 자신과 배우자의 미국 뉴저지 아파트 구입 대금과 관련한 의혹까지 포함해, 누가 박연차로부터 돈을 받았냐고 반문했다.
더 나아가 그 돈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자료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정치적 반박인 동시에 ‘의혹’과 ‘확정된 사실’을 구별해야 한다는 법적·언어적 문제 제기다. 그렇다고 당시 박연차 사건에 아무런 사실관계가 없었다는 식으로 정리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당시 검찰 수사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둘러싼 금품수수 의혹이 제기됐었다.
고가의 피아제 시계와 박연차 자금 문제가 실제 수사의 핵심 쟁점이었다. 다만 노 전 대통령 본인에 대한 형사재판과 유죄 판결이 내려진 사건은 아니며,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수사는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됐다. 최근 일부 팩트체크 보도에서도 ‘시계 수수 자체’와 당시 거론된 구체적인 가격, 그리고 각종 언론 보도 사이에는 구분이 필요하다는 점이 지적됐다.
결국 ‘수사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과 ‘법원의 확정판결로 인정된 사실’을 같은 문장 안에 놓는 순간 정치적 언어는 법적 사실처럼 변질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한동훈 의원이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는 데 있다. 한 의원은 자신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를 담당했던 검사가 아니라는 곽 의원의 반박에 대해, 자신의 주장은 당시 검찰 수사 기록과 공개된 사실관계에 근거한 것이라는 취지로 맞서고 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작수사의 희생자’라는 신화 속에 가두고 있다고 비판한다. 결국 지금의 싸움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느냐는 역사적 문제와 함께, 검찰 수사 결과를 어디까지 ‘팩트’라고 부를 수 있느냐라는 검찰개혁 논쟁으로 연결되고 있다. 검찰청이 사라지고 중수청·공소청 체제가 출범한 바로 그 시점에 17년 전 검찰 수사가 다시 정치의 한복판으로 돌아온 것은 묘한 아이러니다.
여기에 ‘암살자(들)’의 역풍이 겹쳤다. 영화가 역사적 사건에 새로운 가설과 상상력을 덧붙일 수 있다면, 반대편에서도 다른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맞불 논리가 등장한 것이다. 실제 온라인에서는 ‘미는자(들)’를 비롯해 여러 패러디 포스터가 확산됐고, 일부 정치인들이 이를 SNS에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정치가 한 번 멈춰 설 필요가 있다.
영화 속 허구와 정치적 밈은 표현의 영역에 존재할 수 있지만, 그것이 실제 사건에 대한 증거가 되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암살자(들)’의 영화적 설정이 사실의 증명이 아닌 것처럼, ‘미는자(들)’이라는 패러디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관한 어떤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가 될 수 없다. 더구나 이날 권영진 국민의힘 의원은 한동훈 의원과 민주당 사이의 공방에 대해 “비생산적인 정치적 공방”이라며 거리를 뒀다.
뇌물을 줬다는 의혹을 받던 박연차 회장과 수사를 받던 노 전 대통령이 모두 세상을 떠났고, 수사 역시 공소권 없음으로 끝난 상황에서 지금 와서 진실게임을 벌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취지다. 정치권 내부에서도 이 논쟁을 무한정 끌고 가는 데 대한 부담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한동훈 의원에게도, 곽상언 의원에게도 남는 질문은 같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주장인가. 그리고 그 사실을 입증할 원자료는 어디에 있는가. 정치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팩트’라는 단어 자체가 진영의 무기가 될 뿐이다. ‘암살자(들)’가 던진 것은 영화적 상상력이었고, 그에 대한 반격으로 등장한 ‘미는자(들)’ 역시 정치적 상상력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치가 상상력의 대결로만 흘러가서는 곤란하다.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도, 박연차 사건도 모두 실제 인간의 삶과 죽음, 국가기관의 수사와 기록이 얽힌 역사다. 그렇다면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상대 진영의 역사를 밈으로 뒤집는 것이 아니라 기록을 꺼내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곽상언 의원이 한동훈 의원에게 요구한 “그 팩트를 보여달라”는 말은 그래서 단순한 맞받아치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반대로 한동훈 의원이 정말로 ‘팩트’를 주장한다면 그 역시 언론 보도나 정치적 기억이 아니라 확인 가능한 원자료로 답해야 한다. ‘암살자(들)’의 상상력이 ‘미는자(들)’의 맞불로 번지고, 다시 노무현과 박연차의 오래된 사건으로 돌아온 지금, 결국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정확한 기록이다.
참고문헌
- 연합뉴스, 「곽상언, '盧금품수수' 韓에 "감히 모두 팩트라 주장…보여달라"」, 2026.10.03. — 곽상언 의원의 첫 반박과 한동훈 의원의 재반박, 뉴저지 아파트 관련 공방 확인.
- 연합뉴스, 「'盧 수사' 與-한동훈 2라운드…“석고대죄하라”·“성역화 말라”」, 2026.10.05. — 5일 양측 공방의 확산 과정과 한동훈 의원의 추가 반박 확인.
- 시사저널, 「[팩트체크] “노무현 3억 시계·수십억 받아”…한동훈 말 어디까지 맞나」, 2026.10.02. — 피아제 시계 수수 여부, ‘3억 원’이라는 가격, 박연차 관련 금품수수 의혹 및 당시 수사와 이후 경과를 구분해 검토한 자료.
- 한국일보, 「17년 전 '노무현 수사' 다시 꺼낸 한동훈…검찰개혁 논쟁 다시 불붙었다」, 2026.10.04. — 과거 박연차 사건과 현재의 검찰개혁 논쟁이 다시 연결된 배경을 확인하는 자료.
- 한국일보, 「국힘 권영진, 한동훈 '노무현 팩트' 논란에 "비생산적…참전하고 싶지 않다"」, 2026.10.05. — 권영진 의원이 해당 공방을 ‘비생산적인 정치 공방’이라고 평가한 내용 확인.
- 연합뉴스·시사저널·한국일보·TV조선 등 관련 보도 종합.
- TV조선, 「'미는자(들)' '간첩(들)' '부엉이바위의 진실' 밈까지…'암살자(들)'이 불붙인 표현 논쟁」, 2026.09.30. — 영화 ‘암살자(들)’ 논란에서 파생된 온라인 패러디와 정치권의 맞불 논쟁을 확인하는 자료.
Socko/Gh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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